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이력서

박상화 0 1,030

 

 

어느 학교를 졸업했다고 무슨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그러면

당신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으실 거예요.

요람기엔 시장바닥을 굴러다니며 놀았고, 

열두살에  담배농사를 

열일곱엔 연탄장사를 한 삼년 했었지요.

절간에 가서 한 삼년 살다가

먼 동네로 도망가 배고파서 술 담배를 배웠어요

알루미늄 주물반에서 소금알을 삼키며 작업화 몇벌 태우고,

봉제공장 재단반에서 들보에 머리박으며 바늘밥을 먹다가

군대는 방위를 댕겨와서

일산 신도시 하수구 방수하러 다녔구요,

인장 땡기던 토류공 일은 제법 소질이 있었지요 .

수원 삼성전자 기초토목일 다니다

안산공단으로 흘러가 공장바닥 공구리도 치고

염색공장이며 벽돌나르는 일용직도 했었지요.

새벽 인력시장에서 안팔리던 날도 많았고

새벽일하러 두시간 전철타고 세검정까지 갔다가

바람맞고 돌아오던 날은 참 쓸쓸했었어요.

친구들 하고 막걸리 마시다 잡혀가서 겨울 한철 꽁보리밥도 먹어봤고, 

꼭 놀러오라던 건달, 약쟁이들 뒤로하고 

시장통 이층에 있던 조그만 건설회사에 들어가

퀵서비스하다가

인건비 내놓으라는 현장 아저씨들한테 사장대신 멱살도 잡히고

산재로 죽은 사람 살려내라는 유족은 몸으로 때우고

연대보증 회사 망해서 법정에 심부름도 제법 다니고

현장교각위에 올라갔다가 미끄러져 공구리에 빠져보기도 하면서

사직서 내기 전까지 술기운으로 버티고 살았지요.

지금은 골목뒤 전봇대에 가려지는 조그만 구멍가게를 해요.

제가 사장인데, 맨날 고장나는 기계하고 씨름하고

손님이 없으면 

이렇게 이력서도 써보면서

낡고 헐거웠던 세월을 만지작거린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당신은 아실 거예요.

노동으로 손가락이 굵은 분들은

뭐하고 살았는지 얘기하면 대번에 아시더라구요.

번듯한 주특기도 없이 늘 땜빵으로 떠돈 인생이지만, 

저도 껴주시면

구석에 앉아 조용히 술잔만 홀짝홀짝 기울일께요.

 

 

20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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