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가진 것 목숨 뿐이어서
협상 테이블에 그걸 꺼내 놓고
먼저 입적한 친구가 보내 온 가을 편지
가을 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내가 그립거든 이 편지를 꺼내 보게
시장통 골목 끝 문간방 냉골 바닥
진눈깨비 질퍽하여 나막신 없이는 못사는 땅
가문 어떤 어미의 가지 끝에서 나는 났고,
없는 집 아들은
봄 꽃보다 진한 가을 잎이 되기로 결심하였었네.
바람 낚아 햇살 부수기를 이십년 꼬박 개근하고
창자를 태우던 싸움 속에서
문득 붉으니
알고 보면 누구나 끝에 서서
한 발 더 밀려 허공인 게 삶이 아니던가.
분김도 아니고
엎드릴 줄 몰라서도 아니네.
나누면 쪼개지다 사라지고 마는 돈 때문에
나눌수록 커지는 인간의 가치를
쓸어 내려는 욕심.
그 욕심에 맞서 싸움으로서
한없이 커지는 절대가치를 나는 본 것이네
자작나무의 흰 빛은 밤 깊을 수록 더욱 밝고
억수같은 폭우 속에서도
그 희고 밝은 나무는
불꽃이 지지 않고 타오른 다지?
여보게,
하얀 눈이 내 가문 몸 덮어 주는 일
소복한 지상에서 함께 보기로 하세
2014.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