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가을의 연서

박상화 0 887

 

 

가진 것 목숨 뿐이어서

협상 테이블에 그걸 꺼내 놓고

먼저 입적한 친구가 보내 온 가을 편지

 

가을 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내가 그립거든 이 편지를 꺼내 보게

시장통 골목 끝 문간방 냉골 바닥

진눈깨비 질퍽하여 나막신 없이는 못사는 땅

가문 어떤 어미의 가지 끝에서 나는 났고, 

없는 집 아들은

봄 꽃보다 진한 가을 잎이 되기로 결심하였었네. 

바람 낚아 햇살 부수기를 이십년 꼬박 개근하고

창자를 태우던 싸움 속에서 

문득 붉으니

알고 보면 누구나 끝에 서서

한 발 더 밀려 허공인 게 삶이 아니던가.

분김도 아니고

엎드릴 줄 몰라서도 아니네.

나누면 쪼개지다 사라지고 마는 돈 때문에

나눌수록 커지는 인간의 가치를 

쓸어 내려는 욕심.

그 욕심에 맞서 싸움으로서

한없이 커지는 절대가치를 나는 본 것이네

자작나무의 흰 빛은 밤 깊을 수록 더욱 밝고

억수같은 폭우 속에서도 

그 희고 밝은 나무는

불꽃이 지지 않고 타오른 다지?

여보게,

하얀 눈이 내 가문 몸 덮어 주는 일

소복한 지상에서 함께 보기로 하세

 

 

201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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