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햇살이 차려진 식탁

박상화 0 1,091

 

 

설거지 하다 보면

포크에 수없이 가로 새겨진 긁힌 자국.

철수세미로도 지워지지 않은 잇자국.

입에 음식을 넣는 일은

쇠에 고랑을 내는 치열한 일이어서,

포크도 숟가락도 상처투성이.

상처 없는 밥이 없고

고통 없는 기쁨도 없어,

보드라운 하얀 빵도

뜨거운 불길을 견디고 익어간 것을.

그대를 

마주 앉아 천천히 밥을 먹을 때

상처도 고통도 모락모락 증발하는

햇살이 차려진 식탁

 

 

 

018.11.6/11.17

 

* 그대를이 아니라 그대와라고 해야 한다고 그대를은 말이 안되는 비문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여러차례 게속된 지적에도 나는 끝까지 그대를 이라고 고집을 부렸다. 이 시는 그대와로 하면 문법은 맞을지 모르나 싱거워지고 재미없어진다. ​

눈치를 챈 이가 잇을지 모르겟으나, 여기서 그대는 지금 여기에 없다. 그대와 함께 잇을 때 알지 못했던 것이 그대와 함께 먹는 밥상은 햇살이 차려진 식탁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시의 중간에 잇는 깨달음들이 생긴다. 평범한 식사는 사실 그렇게 치열한 것이었고, 그대와 함께 한 식탁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음을 이제사 깨닫고 있는 것을 말해주는 부분이 바로 '를'이다. 여기를 '와'로 쓰면 그 서사가 다 사라진다. 

이 시의 원문은 이렇다. 

 

(지금은 없는) 그대를 (데려다 앉혀놓고)

마주 앉아 천천히 밥을 먹을 때

(그렇게 가족들이 마주앉아 밥을 먹는 모습을 보자니)

상처도 고통도 모락모락 증발하는

햇살이 차려진 식탁

 

 

말을 너무 어렵게 숨긴것이라고 너무 억지라고 할 이도 있겟다. 그러나 저 말은 꿀떡 삼키고 할 수 없는 말이었다. 풀어쓰면 재미없어지고, 감추면 알아보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깊이가 다르나마 그런대로 통할 것이라고 보았다. 비문소리를 들으면서도, 시는 문법에 갇히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목적격조사 '를'을 굳이 고집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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