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한파寒波

박상화 0 960

 


이대로 얼어 붙었으면

피도 돌기를 멈추었으면

피도 멈추어버리면 춥지 않을 텐데


밤거리는 캄캄하다

바다 밑에 깊이 잠긴 도시에 혼자 선 듯

발바닥 두 쪽 만한 자리에도 찬바람이 분다

뼈가 삭아 어찌 간신히 서 있는 듯하다

이 지독한 한기는 피가 돌기 때문이다

어쩌라고 피는 돌아

지독히도 무겁고 떨리는 시간을 지고 섰으라는 거냐


왜 사냐고

왜 피가 도냐고

왜 추위에 벌벌벌 떨며 이 지독한 고통을 견디고 있느냐고


죽음으로 포기로 달아나도

고통이 끝나지 않을 걸 알기 때문에

달아나는 것이 달아나는 것이 달아나는 것이

나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존재는 지워지고 더 고통스러울 것이기 때문에

서 있는 것이

서서 벌벌벌 떨고 있는 것이

가장 치열한 싸움이기 때문에

그나마 덜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아직은 피가 도는 것이기 때문에


 

2018.1.25


* 자본의 세상을 사는 건 한파에 서 있는 남루다. 피가 돌기 때문에 춥다. 추워도 버텨야 하는 건 피가 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도망치는 건 스스로 소멸되는 일이다. 이 추위는 자연이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으로부터 불어오는 냉기, 자본에 병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쥐어짜는 냉기, 그 냉기 속에 서서 버티는 건 춥고 도망가고만 싶다. 기력이 딸린다. 그래도 아직은 서 있다. 내가 무너진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서 그렇다. 언 사람에게 가장 좋은 건 체온인데, 저 고공에도 그런 체온이 전해지면 좋겠는데, 손을 맞잡지 못하면 불빛은 전해져도 체온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피부 밑에 냉기가 돌고, 뼈가 시린 슬픔이 수시로 엄습한다. 마음은 몇 번씩 무너지고 추스린다. 스스로 이겨야지 어쩔 수 없다. 피가 도는 한은 미치지 않고 이겨낼 수 밖에 없다. 그런 고독한 싸움이다. 모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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