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갑자기 현금출납기가 고장이 났다.
현금출납기가 고장나면 구멍가게는 업무 올스톱.
3천가지 물건들과 손님이 주인만 쳐다보는데
고칠 돈이 없다.
일단 앉아서 죽을 순 없으니,
기술자를 불러 놓고 나서
밤새 걱정에 창자를 태우며 잠을 못이룬다.
자본금 없이 시작한 장사
온통 빚으로 꾸려오다보니
한계상황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드디어 온 것 같다.
장사한 돈으로 기술자 주고나면 물건값이 빵구날 거고
그러면 은행이 가만 있지 않을 거고
국세청도 난리를 칠거고
혼자 머릿속에서
멸망의 순서도를 그려가며
팔에 다리에 빨간 차압딱지를 붙이고 앉았다.
아침은 드디어 밝아오고
어디로 그냥 멀리 도망만 가고 싶은데
기술자는 새벽부터 와서
콧노래를 부르며 기계를 고치고 있단다
소 도살장 들어가듯
내 가게를 들어가보니
기계가 고쳐져서 손님도 오고 장사가 된다
사는게 뭐 이런가
피곤해 짓무른 눈두덩일 비비며
요번엔 확실히 죽는 줄 알았는데
물건값 빵구나는 건 낼모레 또 어떻게 해보기로 하고
길게 숨을 내 쉬어 본다.
온 몸이 다 아파서
온 몸이 울고 있다
이렇게 식은 땀에 푹 젖어 산다
2014.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