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가지도 멈추지도 못하는 날 있지.
굳은 새처럼 가만히 굳은 날, 죽어라 달려도 닿지 못하는 날,
형님의 사진에서 말라가는 시래기를 들여다보다
시든 줄기조차 부러진 시래기가 남몰래
깊은 맛을 품어 간 것을 생각하였네.
허공의 냉기와 그늘 속에서 시들고,
빡빡 문질러져 단단하던 줄기마저 꺾이고,
제 지니었던 억센 천성 다 빼앗기면서,
시들시들 시들어 간 시래기가 오래오래
물기를 말려가며 품어온
맛이라는 게 있었던 것을 생각하였지.
비로소 제 속을 풀어내고 연해진 시래기가
뜨거운 국물이 되어 얼어버린 빈속으로 들어가면서
밥은 꼭 먹고 다니라고
살아있으면 맛이 나는 날도 있다고
아픈 창자도 짜르르 훑어주고
시든 등도 쓱쓱 쓸어주던 것을 기억했어.
이제 끝이다 싶을 때 몽우리 툭 터트리는 게 꽃이야.
살 찢어져 꽃은 피고, 입안 헐어 꽃이 피고,
신경이 온통 터진 꽃에 집중된 그 순간에,
살아야겠다는 이름의 꽃이 피더라.
시들시들 시들어 가더라도 남몰래 품은
맛은 잊지 말라고
뜨거운 시래깃국에 성가시게 찬 눈을 말아 먹으면서
눈송이처럼 뜨거워지는 것도 있다는 것을
사진 한 장 들여다보며 생각하고 생각하였어.
2017.11.28
냉기와 그늘 속에서 시들고,
제 지니었던 억센 천성 다 빼앗기면서,
시든 줄기조차 부러진 시래기가 남몰래
깊은 맛 품어 간 것.
비로소 제 속을 풀어내고 연해진 시래기가
뜨거운 국물이 되어 얼어버린 빈속으로 들어가면서
밥은 꼭 먹고 다니라고
살아있으면 맛이 나는 날도 있다고
아픈 창자도 짜르르 훑어주고
시든 등도 쓱쓱 쓸어주었던 것.
이제 끝이라고 입안 헐어 꽃필 때,
시들시들 시들어 가면서도 남몰래 품은
살아야겠다는 그 맛,
뜨거운 시래깃국에 성가시게 찬 눈을 말아 먹으면
눈송이처럼 뜨거워지는 것도 있다는 것.
2017.11.28
깊은 맛을 품어 간 것을 생각하였네// 난 1연의 1,2행은 꼭 살렸으면 좋겠어. 1연의 1,2행이야말로 이 시의 시적인 힘의 뿌리가 아닐까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