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누이밥>
된장에 박아 맛들인 무짱아찌 짜고
뜨끈하라고 반나절 끓인 냉잇국도 짜고
시원사각한 노각지는 찬물에 헹궈도 짰다
짠 건건이에 보리밥 고봉주발도 모자라
바가지채 들이킨 우물물이 세상 달았다
목련은 따스한 새이불 같고,
진달래는 누이의 치맛자락 같고
제비꽃은 파리하던 입술 같았다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된다면서
댓돌 밟고 마루까지 온 햇살을 덮어주었다
혼자 감자 심다 쓰러졌다더니
잠결에 흐느껴 울더라고 이마를 짚어주었다
2017.4.1
고종사촌 누이가 다섯, 이종사촌 누이가 여섯, 친사촌 누이가 일곱, 친누이가 둘, 나는 누이만 스물이다. 제일 큰 누이는 일흔이고, 제일 막내가 마흔넷이다. 그러다보니 어려서 결혼식장이나 시골을 가면 부엌이고 마루고 천지가 누이였고, 형수들까지 보태서 얼마나 이쁨받고 컸는지 모른다.
큰형들은 술이나 먹고, 조무래기 형들은 뒷마당에 모여서 담배나 피우고, 꼬마들은 지들끼리 작대기들고 뛰어다니며 놀았다. 어디 낄데가 없던 나는 누이들을 도우면서 시간을 보냈고, 그래서 누이들과 친했다.
제일 큰 누이만 그 시절 친정을 잘 오지 못했기 때문에 친해지지 못했고, 나머지 누이들과는 하나하나 다 추억도 있었다. 아니다. 누이 하나는 서른 둘이구나. 서른 둘에 죽었다. 수원 삼성전자 다니면서 돈을 모아서, 그렇게 가고 싶어하던 늦깎이 전문대학을 나오고, 어디 고등학교 과학실 조교로 있다가 백혈병으로 죽었다.
예쁘고 잘 웃었다. 나보다 한 살 아래라서 오빠오빠 잘 따랐다. 뼈만 남아서 살고싶다고 나를 안고 울다가, 바다가 보고 싶다고도 하고, 회가 먹고 싶다고도 해서, 회는 사주고 바다는 누이의 체력이 안돼서 나중을 약속 했었는데, 그 어느 저녁 퇴근길에 소식만 들었다.
누이가 많아서 인가. 누이는 참 만만하다. 만만하고 슬프고 미안하다. 누이의 자식이 죽었다는 소식, 누이의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 소식이 끊긴 누이가 거지꼴로 돈을 꾸러 다니더라는 소식, 평생 고생만 하더니 부자가 됐더라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누이들이 시집가서 산 세월의 앞에 처녓적 꿈 많고 명랑하던 그 모습들이 먼저 떠오른다. 누군가 하늘하늘한 진달래 꽃이 피었더라고 사진을 올리고, 누군가는 목련꽃을, 누군가는 제비꽃을 올려주어서 이제 사월이구나. 그 꿈 많던 누이들이 나물 캐러가던 대바구니에 나물대신 꿈을 가득 담아와서 아름답던 그런 시절이구나 싶다.
사월은 나무의 잎이나 풀빛이 꽃보다 아름다운 계절이다. 꽃보다 잎의 색이 더 곱고 환한 때는 년중 사월과 시월뿐이다. 열일곱이던 시절, 누이들은 쑥보다 고왔고, 소년은 누이가 좋았다. 사월의 소년과 누이는 꽃보다 볕보다 고왔다. 그 고운 빛깔을 잃어버린 날이 또 낼모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