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숲엔 나무가 없다
나무는 혼자 서 있을 때만 나무다
땅바닥에 질질 끌리는 무거운 그림자를 지고
나무가 숲으로 가면
나무는 없고 숲이 있다
찬눈에 젖은 나무도
어둠에 침몰된 숲이 일제히 꽃불을 들면
나무에서 나무를 타고
마른 가지에서 마른 가지를 타고
체온이 전염되면서
새싹을 터트리면서 봄은 온다
숲이 숲을 터트리면
볕살이 내려오지 않을 수 없다
봄하늘이꽃들은 봄하늘이꽃들대로 군락을 이루고
버드나무는 버드나무대로 물을 퍼 올리고
줄맞춰 전진하는 포플러도
바닥을 쥔 가시나무도
굳었던 몸을 풀어 부지런할 때
광장은 텅 비어 비로소 충만해진다
땅거죽이 나고 45억년동안
숲을 가두려는 어떤 시도에도 가둬진 적 없는 숲
봄을 막으려는 어떤 시도에도 막혀본 적 없는 봄처럼
편지를 써 주렴
아프게 스러져간 핏빛 이파리들이
숲의 바닥에 고이지 않았다면
꽃불도 봄도
저리 환하게 피어날 수 없었을 거라고
다시 너를 퍼올려 봄을 터트린 건
봄의 과실을 들고 이를 드러낸 정치가 아니라
흙속을 기며 기억하고야 만 뿌리들이었다고
20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