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토우土牛

박상화 0 1,173

<토우土牛>

흙 빛이 된 일꾼 문 밖에 세워두고
겨울 냉기 지고 가라 기원했다니
어찌 천년 두고 사람 마음 바뀌지 않는가

일만 하다 쫒겨난 사람들
흙소로 쓰고 버리나 뭐가 달라

냉기 서린 문 밖에 서서 벌을 받으니
봄을 세우지 않으면 문 안에 들어갈 수 없고
시린 숨 내 뿜으며 긴 밤 세어도
언 발 싸매주는 이 없다

집집마다 입춘대길 써 붙였어도
함께 봄을 세우자 등두드려주는 이 없고
집집마다 개문백복래 써 붙였어도
들어오라 문 열어주는 곳 볼 수 없으니

냉기를 참은 흙소의 덕으로
매화는 피고
길에서 비를 맞은 일꾼의 덕으로
초록 싹이 나는 걸 누가 알아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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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우를 내는 일(出土牛事): 『예기(禮記)』에 의하면 계동(季冬)에 궁중의 역귀를 쫓는 행사인 대나의(大儺儀)때 "토우를 만들어 문 밖에 내놓아 겨울의 추운 기운을 보낸다(出土牛以送寒氣)"고 하였는데, 고려 때는 입춘에 토우를 내는 일이 시행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입춘 [立春]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페이스북이 온통 입춘축이니 보는 눈이 호강이다. 입立자는 서다는 뜻과 함께 세우다는 뜻도 있다. '봄이 서는 날'이라 해도 되고, '봄을 세우는 날'이라 해도 되나부다(한자로 수동태, 능동태를 어뜨케 구분하나 갑자기 궁금시럽다). 농사를 짓는 형님 말씀에, 입춘이면 들을 둘러보고 씨를 고른다 하셨으니, 입춘이 그저 오는게 아니라 내가 움직여야 비로소 봄이라는 것이 원뜻에 가까운 듯 하다. 자, 인제 고만 놀고 일하자! 뭐 그런 뜻이겠지.

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일꾼들이 언제는 일 안하고 한겨울 좋이 놀기만 한 것 같지만, 일꾼들은 겨울에도 실컷 일만 했다. 그러니까 입춘이니 하는 것도 사시장철 맨날 놀기만 하는 양반호족들이 일꾼들 부려먹으려고 지어낸 작업시작 호각소리 같은 것이지 싶기도 하다.

작년엔 춘春자를 춘椿자로 바꿔 써 보았는데, 올 해는 입立자가 눈에 들어 온다. 내가 세우지 않으면 봄이 아니니 봄도 그저 오는 것 아니겠다 싶고, 세상 계절의 변화가, 우주의 회전이, 그냥 되는 것 같아도 아니었나 싶다. 어디선가 누가 얼어감으로 겨울은 냉기를 빼앗기고, 어디선가 누가 비를 맞기에 새싹은 자라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작용 없이는 다음 작용이 이어지지 않는 것이 우주의 공허함이라면, 만물은 생동하는 것이 맞고, 봄을 맞아 기쁜 만큼, 어디선가는 슬픈 겨울의 눈물을 흘린 이가 있었을 것이 자명하다.

이런 위선적인 글은 쓰지 말자고 생각해놓고 또 쓰고 앉았다. 입춘이니, 봄이니, 수다떨다보니 마음이 좀 녹아서 인가. 나처럼 스스로 가증스러운 사람이 또 있을 터이므로 오늘만 봐 준다. 습관이 금새 바뀌겠는가. 몸부려 사는 얘기는 못 쓰고 헛 공상이나 쓰고 앉았으니 한심하다. 어쨋든지간에, 나는 가 보지 못하면서 남들 가지 않음을 탓해 뭐하랴. 그저 미안해서, 나도 얼어죽어가는 토우여서, 문 밖에 선 것들은 다 똑같아서, 천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신분빈부의 차이가 참으로 참으로 깊어서.

나는, 셔벌, 어디가서 봄을 좀 땡겨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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