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돌아보면 나는
언제나 비를 맞고 있다
이발비가 아까워
시장골목 이발학원에서 머리를 뜯겨가며
빡빡머리를 하고 다니던 여덟살 무렵부터
공동묘지 옆 싸구려 자취방을
기어 올라다니던 스무살
잔업을 끝내고, 막차까지 남은 이십분동안
포장마차에서 컵소주를 들이키던 서른
문득 세어보니 마흔
산다는 건
전쟁터에서 총알을 피하는 거지만
산다는 건 또
할 수 없이 비를 맞는 것
늙으신 부모님, 어린 자식들
가여운 아내, 바쁜 형제들
장전된 직장 상사, 어질러 놓는 신입들
낯선 강아지 새끼, 고장난 라이터
누구와 싸워도 판판이 깨지기만 하면서
축 쳐진 하루를 주머니에 쑤셔넣고
술기운에 어깨를 접고 걷는 것
비가 온다고 해도 나는 걸어야 하고
가정으로 일터로 돌아가야만 하고
내 어깨는 언제나 우산처럼 펴져있어야 하니까
내가 비사이로막가씨였으면 좋겠다고
젖은 담배를 피워물며 잠깐
생각한다
2014.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