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비사이로막가씨가 필요하다

박상화 0 1,141

 

 

돌아보면 나는

언제나 비를 맞고 있다

 

이발비가 아까워

시장골목 이발학원에서 머리를 뜯겨가며

빡빡머리를 하고 다니던 여덟살 무렵부터

공동묘지 옆 싸구려 자취방을 

기어 올라다니던 스무살

잔업을 끝내고, 막차까지 남은 이십분동안

포장마차에서 컵소주를 들이키던 서른

문득 세어보니 마흔

 

산다는 건  

전쟁터에서 총알을 피하는 거지만

산다는 건 또

할 수 없이 비를 맞는 것

 

늙으신 부모님, 어린 자식들

가여운 아내, 바쁜 형제들

장전된 직장 상사, 어질러 놓는 신입들

낯선 강아지 새끼, 고장난 라이터

누구와 싸워도 판판이 깨지기만 하면서

축 쳐진 하루를 주머니에 쑤셔넣고

술기운에 어깨를 접고 걷는 것

 

비가 온다고 해도 나는 걸어야 하고

가정으로 일터로 돌아가야만 하고

내 어깨는 언제나 우산처럼 펴져있어야 하니까

내가 비사이로막가씨였으면 좋겠다고

젖은 담배를 피워물며 잠깐  

생각한다

 

 

201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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