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하피첩

박상화 1 1,139

하피첩

 

 

문 밖에 눈 오는데 발자국 없다

낮은 처마에 시린 눈 얼고

나무들 어둠에 섰다

흐린 불빛에 날리는 마음 드러나고

켜켜이 덮이는 눈에 긴 그림자 묻을 수 없어

다산도 이런 밤에 글을 썼겠지

긴긴 밤 한 자 한 자 눈이 오는데

비단치마 자르는 소리 하염없이 쌓인다

 

문 밖에 눈 오는데 그치지 않는다

돌아보면 양파껍질처럼 슬프고

겹겹 외투 다 벗고나니 아무것도 없다

소리를 감추어도 흐린 불빛에 들키는 눈물

발시린 긴 그림자 묻을 데 없어

함께 짜던 비단치마 잘라 책을 엮으니

긴긴 밤 한 자 한 자 눈이 오는데

고운 발자국 소리 하염없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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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조성웅
문 밖에 눈 오는데 발자국 없다니, 네 고립과 고독의 깊이가 내 피부에 와 닿는 것 같다.

긴긴 밤 한 자 한 자 눈이 오는데, 먼 이국 땅에서 먼 조선시대의 정약용에게까지 네 마음이 닿을 수 있다니, 네 '날리는 마음'의 폭과 넓이를 가늠하기가 힘들구나.

겹겹 외투 다 벗고나니 아무 것도 없는, 투명한 맨 몸으로, 이주노동자로 트럼프 시대의 개막을 보는 네 심정을 헤아린다.

네 속울음 드러내지도 못하고 쉬이 들키지 않을 네 눈물 이리 전해주니 고맙다. 
네 눈물 자욱 한 자 한 자 헤아리다 보면,
그렇게 고운 발자국 소리에 쏠리는 네 마음을 조금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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