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그 사람

박상화 2 1,738

 

<그 사람>

 

 

가장 간절한 사람이 스스로 가장 과격할 것이다

그 사람에게는 옆도 뒤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천릿길 한달을 소타고 온 사람처럼

천릿길 열흘을 트랙터타고 온 사람처럼

여기서 뒤돌아서면 죽는 사람과

멈추면 다 무너지는 사람이 있어

이 더러운 나라가 숨을 쉰다

분해서 주저앉아 울다가도

태연히 조여오는 시간을 생각하면

눈물자국 얼룩진 눈도 부릅떠지고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사람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어둡고 빈 광장 새벽두시에

권력과 억지의 벽을 뚫고 기어이 도착한 사람

거친 그의 숨결 하나가

이 나라의 숨소리다

가슴을 찢으며 파고 드는 숨소리

그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다시 열흘을 트랙터 덜덜거리며 가는 길은

천리에 천리를 보태 나아가는 길

광장을 통채로 떠 메고 돌아가

바꾸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수 없이 메질하느라 텅텅텅 뛰는 그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소처럼 우직한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가 떠메고 간 광장의 찬 바람이

불길보다 뜨겁게 다시 불어 올 것을 안다

간절한 사람이

가장 진실한 사람인 것을 안다

 

 

 

2016.11.27

 

 

메모 : 2016년 11월 26일 백구십만이 모인 광장의 집회가 평화로 가득하던 날, 열흘 온 찬길이 경찰의 억지에 막히고, 깃발도 트럭도 트랙터도 뺏긴 빈 손으로 , 피가 터지고 속이 터지고 손은 얼어 곱은 새벽 두시에, 포기하지 않고, 돌아가지 않고, 기어이 광장에 집결한, 그 간절한 농민군 30명을 보았다. 전봉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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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조성웅
'스스로 과격하다'는 표현은 ' 옆도 뒤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서 난 가장 간절한 사람은 옆도 뒤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가 더 좋겠다 싶어. 

여기서 뒤돌아서면 죽는 사람과
멈추면 다 무너지는 사람이 있어
이 더러운 나라가 숨을 쉰다

이 또한 얼마나 적합하고 절절한 문장인가!
그래 "간절한 사람이 가장 진실한 사람이다"
박상화
과격하다는 표현이 들어간 게, 하두 가두리안의 평화집회를 외친다니 답답해서 들어간 건데, 또한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어. 간절한 사람에게는 치장도 예의도 품위도 의미가 없다. 목표를 향하여 가야만 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투자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목표를 향해가는 화살처럼 집중된 에너지만으로 여기는 거지. 근데 그게 '과격하다'로 표현이 될까가 의문이었는데, 고민좀 더 해봐야 겟네. 다음줄과 의미 반복이니 강조로 봐야하나, 늘어지려나 두고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자.

사실 처음에 이 시를 탈고했을 땐 스스로도 감격이 있었어. 잘 썼다는게 아니라 새벽 두시에 도착한 농민군에 대한 감격이었는데, 최종 탈고전에 팩트를 다시 확인해 보니 내가 시간계산을 잘 못했더군. 나는 26일 토요일 광장의 집회가 다 끝나고 해산한 후에 도착한 건줄 알고, 포기하고 돌아가지 않은 농민군의 의지가 감격이었는데, 알고보니 26일 집회하기전 새벽이었던 거야.
 그래서 '평화로운 집회가 끝나고 모두 돌아간 빈 광장에'라고 썼던 부분을 부득이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으로 바꿀 수 밖에 없었어. 그러다 보니 시가 갑자기 기운을 잃어버리더군. 무척 아쉬웠는데, 팩트니 어쩔수 없었지.

한가지 더 말하자면, 제목을 '전봉준'으로 하려다가 특정 영웅보다 일반 민초를 중심으로 하는 시각을 유지하고 싶어서 '그 사람'이라고 붙인건데, 시를 게시하고 나서 다시 읽어보다가 보니, 엄머, 이 그사람이 박근헤로 읽힐수도 있겠다 싶더라고. ㅋㅋ 자세히 읽으면 그렇지는 않은데, 설 읽으면 그럴 수도 있겟어서 오해를 없애는 장치를 더 마련해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퇴근시간이 되서 그만 두었던. 그런 뒷얘기가 있네. ㅎㅎ 

시를 쓰면 그 한편에 마음에 드는 문장은 한두줄 뿐이고, 그 자체가 해체되면 안되도록 잘 짜여진 경우는 거의 없더군. 마음에 드는 문장 몇줄씩 모아서 한편을 만들어도 말이 되겟다 싶은 게, 아마 내 생각의 흐름을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쓰다보니 천편일률이어서 그럴게야. 나중에 정리할 때, 그렇게 버리고 모아서 다시 정리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네. 그러면 한 십편당 한편정도로 줄여서 좀 간소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이렇게 모아서 나중에 '흙'을 썼던 것을 중심으로 장시 한편을 만들어 보고싶어. 자네가 '공장연작시'를 쓰는 것처럼, 나도 툭툭 뱉어내는 토로가 아니라 뭔가 한줄거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고민이 있네. 열심히 쓰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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