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500일

박상화 3 1,850

 

 

 

공장 밖이었다

그늘막 친 담벼락에 붙어 구부러진 잠을 잤다

이기고 돌아갈 꿈을 꾸었다

 

모기와 싸우고 쌀과 싸우고

가실 줄 모르던 갈증과 분노와 싸우고

아사히글라스 일제기업과 싸우고

벽같던 구미시민과 싸우고

구미시청과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웠다

 

말뚝 한개 회사땅에 들어가면 소송이 걸렸다

투명한 유리벽이 점점 두꺼워지고

바람불면 날리는 텐트 한장이 점점 무거워지고

밀리고 또 밀려나고 아프게 했지만

내 가족에게 만큼은 

무너지지 않는 성이 되고 싶었다

 

파아란 하늘이

사람을 더 서럽게 하는 날도 있다는 걸 알았고

힘을 모으지 않으면

눈물은 아무도 모르게 깨져버리는 마음이라는 것도 알았고

묵묵한 가족에게 미안해 

파열하다 너덜해진 속을 꿰메는 것도 

뜨거운 투쟁이라는 걸 알았다

 

- 춥지? 

- 조금만 더 기다려 

- 아빠가 금방 텐트 세워줄께

 

잘린 팔, 찢어진 가슴, 부러진 목,

악몽에서 악몽으로 이어진 500일의 꿈과 눈물,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잇고 이어서

기어이 세워 올려야만 하는 텐트가 있다

기어이 다시 서야하는 아빠가 있다

 

가난한 아빠, 해고자 아빠가

더러운 권력과 권력의 야합이 밟아 뭉개려하는

- 구미, 아사히사내하청노동조합!

노동조합 사무실을 세우고

흩어진 노동자를 묶어 세우고

끝내 싸워 노동자의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

 

보아다오, 아빠의 싸움을,

부러지고 찢어지고 남루를 걸쳤으나

한번도 무릎꿇지 않았던 이 노동자의 의지를!

 

기억해 다오, 

500일간 수 없이 철거되고 다시 세운 텐트를!

수 없이 철거되고 다시 세운 마음을!

 

그리하여 함께 외쳐다오, 

기어이 투쟁, 오직 투쟁만을!

 

투쟁!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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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신경현
파아란 하늘이 사람을 더 서럽게 한다는 문장이 가슴에 비수처럼 꼿히네요.그 파아란 하늘이 쫓겨난 노동자들에게 제 땅에서 쫓겨난 농민들에게 제 집에서 쫓겨난 도시빈민들에게 더 없이 잔인하게 느껴질 법 하네요.내일 구미 갈 수 있으면 낭송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어찌 될지 모르겠네요
Jinbo73
어제 구미 아사히 갔는데 시 낭송은 못했네요.미리 짜여진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서 시 낭송을 할 시간이 없어서..차헌호 지회장은 많이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하더군요.그래서 괜찮다고 다음에 속닥하이 해방글터가 아사히에 와서 막걸리도 한잔하고 시낭송도 하면 좋을것 같다고 이야기했네요.500일 힘들게 투쟁하고도 아직까지 씩씩한 모습이어서 보기 좋았고 짠하더군요
박상화
다녀 왔으면 됐다. 고맙다.

우리도 시낭송을 좀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를 써서 그저 읽으면 잘 알아듣기가 어렵고, 재미가 없다. 귀한 시간 내서 집회에 참석하여 듣는 사람들에겐 벌이다. 웅얼웅얼 학교때 교장선생님 훈시처럼 귀엔 들어오지 않고 지루하기만 한 시간일 것이다.

그래서 짬이 나면 이 생각을 좀 해보면 좋겟다.

시를 쓰는 것과 달리, 시낭송은 한편의 연극이나 뮤지컬이 되어야 한다. 시와 낭송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배경음악과 조명등 효과와 피쳐링, 효과음, 영상등 무대장치를 모두 결합하면 인상적인 시낭송을 만들수 있다. 그러나 그런 부대장치는 돈이드는 함정이 있다. 있는 장비를 사용하고 돈이 안드는 효과적인 시낭송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집회에는 기본적으로 마이크와 음향시설이 있다. cd든 메모리든 배경효과음만 준비하면 그냥 시낭송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시낭송을 만들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이건 내가 어려서 경험한 이야기이다. 친구가 이육사의 '광야'라는 시를 읽는데, 배경음악으로 비바람이 몰아치는, 태풍이 오는 그런 소리를 깔고, 마이크에 에코(메아리)효과를 잔뜩 주었다. 그리고 시낭송을 하는데, 마치 비바람 몰아치는 광야의 먼데서 누군가 시를 낭송하는 듯한 착각을 주는 것이었다. 기존에 잠잠하게 얌전하게 웅얼거리던 시낭송이 아니었다.

아직도 유튜브를 보면 시낭송이라 하면, 모두가 착 가라앉고 깔고 잘해야 감수성 돋는 배경음악을 깔고 시를 읽는 것만을 생각하는데,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나 정태춘의 노래중에 낭송하는 것들을 보면 느낌이 확 다르다.

낭송자도 그런 시의 분위기에 맞춰서 잔잔하게, 크게, 소리지르며, 빠르게, 아주 느리게도 낭송할 수 잇어야 한다.   

시낭송에 쓰이는 시는 그 집회의 분위기와 맞아야 한다. 잔잔할 수도, 힘찰 수도, 용기를 주고 도닥거릴 수도 잇지만, 내용은 검토되어야 하는데, 읽는 시와는 또 달라야 한다. 입장을 바꿔 집회에 참석한 사람이 되어보면, 첫째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잇어야 하고, 그러러면 단문위주거나, 집회의 내용이 들어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잇어야 하고, 둘째는, 알아들은 말이 꼭 내맘과 같거나  미처 생각지 못한 절묘함이 있어야 한다. 특별히 절묘함이 없을 경우는 꼭 내맘과 같은 문구를 넣어 주는게 좋다.

요컨대, 갑을오토텍이라면 매를 맞아도 굴하지 않던 마음, 잘하고 있다고 힘찬 문구를 넣어주는 것이 좋을 것이고, 경북대 청소노동자같은 경우는 서럽고 아픈 소외감과 무력감을 같이 느껴 주거나 다독여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진집회에서 김진숙지도위원 같은 경우, 자존심상한 굴욕감을 건드리고 추동하는 쪽으로 하고, 김제동 같은 경우는 집회의 정당성을 부각시켜주며 당당하게 만드는 쪽으로 한다. 그런 식으로 집회의 성격을 잡고, 시낭송의 성격을 기획하고 이에 맞는 시와 음향을 준비하면 훨씬 공감받는 시낭송이 될것이다.

시낭송이 하두 재미없으니까 집회에서 시낭송을 한다하면 나같아도 쉬는시간으로 여길 것이다. 몰두하게 해야한다. 미리 분위기를 잡자면 음향이 참신한게 제일 좋다. 서두의 음향이 주는 분위기를 따라 낭송자도 연극인처럼 강렬하게 낭송해야 한다. 수줍어하면 안된다.

집회는 시간을 때우는 게 아니라, 몰두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 시간을 통해 교육받고 힘을 받아야 한다. 문예활동은 그런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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