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구미-2016.11.14

 

 

 

백만대군, 우리 안에서 파티를 벌이는 동안

한 학생 홀로 적진에 들어가 피켓을 들었네

 

팔방진八方陣안에 갇힌 백만이 취해있는 동안

배고픈 다섯 결사대 적진에서 싸웠네

 

백만대군 꽃잎처럼 바람에 쓸려가고

한 학생과 다섯결사대는 내 가슴에 송곳처럼 꽂혔네

 

역사는 쪽수를 기록하고

가슴은 용기를 기록했네

 

 

201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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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조성웅
보수야당이 설치한 무대는 또 다른 명박산성이었어. 청와대로의 행진을 너의 말대로 팔방진 안에 가둬버렸지. 백만의 행진은 무대를 바라만 봤지. 자신의 요구를, 자신의 삶을, 자신의 행진을, 자신의 민주주의를 일구지 못했지. 무대를 기획한 자들, 누군가는 선별되고 누군가는 배제되는 그러한 기획을 거부하지 못하고, 바라만 봤지. 무대 기획안에 따라 웃고 박수치고 '닥쳐'라고 따라 외치지만 정작 자신이 발언할 기회를 영영 박탈당했지.

촛불은 흐르고 흐르고 흘러서 흐름 자체가 되는 것이야. 무대 뒤에 즐거움이 있고 무대 뒤에 계급투쟁이 있어 그렇지 무대 뒤에 혁명이 있는거야.
그래서 "가슴은 용기를 기록했네"
박상화
백만이 모였다 흩어진 다음다음날이지. 구미에서 박정희 무슨 기념회가 열렸는데, 그 입구에 아주 작은 한 소녀가 서 있었어. 후드잠바를 입고, 마스크를 썼지만, 작고 가는 하얀손이 "박근혜 퇴진"이라 씌인 피켓을 들고 그 피켓 뒤에 얼굴을 묻고 서 있었어. 학생이라는 것 같았어. 행사에 참석하던 영감이 피켓을 쳐 떨어지게 하고, 중년의 여자가 왼갖 욕을 해 댔지. 그 험한 입들 한 가운데 학생은 혼자 서 있었어. 경찰도 잇고, 기자도 있고, 현장 경비도 있었는데, 고개도 들지 못하고 아마 무서워서 무척 떨었을 텐데도,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계속 서 잇었지.

그 학생을 보고 달려온 시민 몇이 함께 피켓시위를 하다가, 어떤 아기엄마는 폭행을 당하고 울기도 했어.

더 안쪽으로 들어가서 아사히 동지들이 "박근혜 퇴진"이라는 피켓을 들고 섰어. 넷이 피켓을 들고, 차헌호동지가 옆에 서잇고, 한동지는 녹화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 몸싸움이 말도 못했어. 노인들, 아줌마들이라 맞서지도 못하고 그 광기에 찬 악다구니를 당하면서도, 그들은 버티고 싸웠어. 

백만의 평화보다 더 가슴에 박힌 싸움이었지. 나는 그 악다구니와의 싸움을 평화라고 생각했어.

누구 말대로 "평화"란 해고 없는 세상이고, 제 입맛대로 해 먹지 못하는 세상이지. 울타리를 부수고 나가 자연 속에서 제 마음따라 사는게 평화지, 도살장 울타리 안에서 풀을 씹고 도살될 제 순서를 기다리는 게 "평화"가 아니지. 

그래서 "가슴은 용기를 기록했네"라고 썼지. 용기는 무모함이 아니고, 무서워도 도망가지 않는 마음이고, 정 무서우면 도망가더라도 잊지 않는 마음이 용기지. 우리편 백만명 사이에서 고래고래 외치는 게 아니고, 적의 한가운데서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는 걸 믿는게 용기지.

한가지라도 한발짝이라도 옳은 일에 다가서는 것, 햇볕의 영토를 한뼘씩 늘려나가는 것, 구호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힘을 늘리는 것, 그런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네. 사실상 저 백만은 박근헤일당이 불러 준 백만이 아니겠나? 내 것이 아니지. 내 힘이 아니야. 그건 내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없는 힘이지. 그건 소용없다는 생각이네. 단 다섯명이라도 내가 쓸 수 있는 힘이 필요해. 그게 저 아사히 동지들의 똘똘 뭉친 결기가 아니겠는가 생각하고, 예전 스타케미칼의 11명이 아니었겠는가 생각하지.

중요한건 쪽 수가 아니다 싶더군. 지난 수십년간 누가 감히 구미에서, 박통기념식장에서, 피켓시위를 할 생각을 했었겠나? 장개석이 그랬다지? 수천만 국민군이 해내지 못한걸 윤봉길 혼자 해냈다고. 그들은 얼마나 놀랐겟나? 지난 수십년간 한번도 건드려진적 없었던 자신들의 성지에 피켓의 그늘이 드리웠다는건 청천벽력이 따로 없는 일이었겠지. 경험해 본적 없는 놀라움이었겠지.

백번 소리지르는 것보다 한 대 때리는 게 더 효과적이다. 그것이 적을 무너뜨릴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햇네. 어떤 근사한 조직이나 제도를  만들어도 '자본주의'깃발 아래일걸세. 함성만으로는 자본주의를 깨는 걸 만들지 못할 거야. 설령 신자유주의가 낡아서 폐지하고 공산주의를 만든다고 해도, 그것은 자본주의 깃발 아래에서의 공산주의의 가면일걸세. 그러니 한대 후려갈길 슬리퍼 짝이라도 손에 쥐어두는 것이 나을게야.

백만의 인파를 보면서 까닭없이 머리가 아팠네. 그 학생과 아사히동지들을 보는 순간, 아프던 머리가 씻은 듯이 나았네. 백만의 손에 주어진 백만개의 함성보다 내 손에 쥔 슬리퍼 한짝이 더 큰 힘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네. 슬리퍼 휘두를 힘만 있으면 사람은 자석에 따라오는 쇳가루처럼 따르게 마련일걸세. 그러니, 어떻게 햇살의 영역을 한뼘씩 늘려갈 것인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은 늘 어떻게가 고민이지. 아사히처럼 좌충우돌 해나가면 길이되고, 늘려가 지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야.

백만이 모여서 긍정적인 점도 있더군. 만희형님이 그러시던데, 나도 잊고 있던 힘이 내 안에서 용솟음치던걸 느꼈다고. 오래전에 지치고 실망하고 떠나간 사람들 밑바닥에 숨어있던  힘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전조일지도 모르고, 패배감에 절어 있던 사람들이 힘을 얻고 잇는 것도, 즉, 세의 흐름이 바뀌는 것만큼은 확실히 긍정적이더군. 다만 내 힘이 아니므로 그런 기분은 얼마나 갈지 모른다는 점이 함정이지.

모르겠네. 멀리서 보기만 하는 처지, 주둥이방아 찧을 깜냥도 안되는 줄 아니, 입 다물고 조용히 귀경이나 해야 하는데, 안보면 몰라도 보면 답답하니, 그나마 여기서나 우리끼리나 떠들어 보네. 해방글터가 아사히에 힘을 실어줄 기획도 해 보고, 시를 정기적으로 공급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네. 친하게 지냈으면 좋겟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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