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빨리 커서
정의로운 사람이 되겠다던 꿈이 오롯했던
내 인생의 책장을 넘긴다
이십년 삼십년을 기다려도
한 뼘도 더 커지지 않는 키, 정의가
굽신하여 밥먹고 사는 게 된지 오래.
아이들은
허름한 옷을 입혀도
벼를 빨아들이는 탈곡기처럼 무섭게 크고
하루 하루의 책장은 풀 칠 한 듯 똑같다
뭐가 정신없이 바쁘다가 돌아보면
책갈피는 비어있고
두툼한 껍데기만 골병이 들어있다
30년 동안 나는
책장을 넘기기만 바빴다
한 줄이라도
기억할만한 기록을 남기지 못했고, 알콜로 된
잉크는 모두 증발하였다.
이렇게 깨끗하게 살았구나, 감탄을 하며
소주를 한 잔 따른다.
이유도 모르고 슬프고 서러워 진다.
2014.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