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노무담당 10년
기억에 남는 일이라곤
해고통보를 했을 때 모가지를 끊어 버리겠다던 협박
노동사무소 불려가서 개장국 사 바치고
명절 마다 뇌물 갖다 바치며 꼬리 흔들던 추억
소주병 깨부시는 유족 앞에서
밤새 곶감처럼 오그라들고 합의서 받으며 나누던 악수
인건비 떼먹고 도망간 하청사장 대신
현장 노동자들에게 둘러싸여 실컷 먹던 욕
하필 사람과 싸우는 일로 밥먹고 사는게 지겨워서
어디 작은
너무 작아서 골목 틈새에 숨어 보이지도 않는
전봇대에 가려 안보이는, 그런
구멍가게 주인이 되면
돌 틈 사이 가재처럼 조용히 살 게 될 줄 알았더니
이 기계 저 기계 자꾸 고장이 나서
생전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자잘한 기계부품들과 종일 싸우다 지치는 저녁
사람과 싸울 때
좀 잘해줄 걸, 싸우던 사람이 그립고
소주 한 잔 사주며
등 두드려 위로해 주던 사람들도 그립고
다시 돌아간대도
그나 나나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게 그 일인데
칼이나 무나
깍두기 만들려면 누군가는 무가 되어야 하는 건데
꽁초를 비벼 끄고 달만 바라 본다
빛나는 연장보다
때묻은 손이 더 좋다
2014.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