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입산入山

박상화 7 2,613

 

 

 

햇살이 앞서 간 길은 

바스락바삭 걸음마다 바서지다

고인 물은 가득 비었다

하산하는 물소리, 들어도 모르고

산에 드는 길도 멀다

푸른 산 다 타도록 숯이 되질 못했으니

언제 빛 좋은 숯을 구워

펑펑 쏟아지는 흰눈 한짐을 해 지고

어둠 아래 고인 숱한 별빛 속으로

하산下山을 할까

 

 

201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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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신경현
졸졸졸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요..물 소리 따라 산 아래 마을을 그리며 산에 드는 사람의 뒷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네요^^
박상화
그림을 잘 보아 주어서 고맙다. ^^
김영철
하산은 쉽지만은 않다
뒤도 한번 돌아보지 못하고 달려만 온 세월
돌아보니 천리 벼랑이다
오를때는 몰랐지만 돌아본 곡절이
바스러지고 고인물이 되어 있다
숮처럼 타드러간 심장속에 내면의 물소리
볊빛이 찰랑거린다
하산은 내려가는것이 아니라 다시오르려는 의지라는 것이 짧은 시속에 진하게 풍겨온다
추락하자 추락할때는 바닥까지 추락하자
그 곳이 하산이리니
박상화
형님 말씀이 시보다 깊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상화
자기 시에 주절주절 해명을 붙이는 것은 너덜한 짓인 줄 알면서도, 이 시는 나름 복잡한 생각들이 엮어 나온 것이기에 기록을 남겨둡니다.

<입산入山>

햇살이 앞서 간 길은
바스락바삭 걸음마다 바서지다
고인 물은 가득 비었다
하산하는 물소리 들어도 모르고
산에 드는 길도 멀다
푸른 산 다 타도록 숯이 되질 못했으니
언제 빛 좋은 숯을 구워
펑펑 쏟아지는 흰눈 한짐을 해 지고
어둠 아래 고인 숱한 별빛 속으로
하산下山을 할까

최종적으로 이렇게 썼으나, 많이 바꾸고 고민했습니다.

햇살이 앞서 간 길은
바스락바삭 걸음마다 바서지다

가을입니다. 햇살이 강합니다. 낙엽이 밟히고 바서집니다. (바숴지다, 바수어지다의 올바른 표기는 바서지다입니다.) 여기서 바서지는 건 낙엽이 아니라, 걷는 사람의 발입니다. 중년이든 장년이든 그러한 사람의 걸음은 발자욱마다 바서지는 고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햇살이 앞서 간 길은
바스락바삭 걸음마다 내 발이 바서지다

라고 썼다가, '내 발이' 너무 설명적인듯 하여 뺐습니다. 알 사람이 알아 보겠거니 했지요.

고인 물은 가득 비었다
하산하는 물소리 들어도 모르고
산에 드는 길도 멀다

산을 오르다 보면 소가 있고,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습니다. 소에 고인물은 명경지수, 거울같이 맑지요. 추수秋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가을 물은 깨끗하고 맑다는 것입니다. 고인 물을 들여다보면 바닥이 보입니다. 가득찼으나 빈 것의 경지, 채우고도 비운 경지가 거기 있습니다.

흐르는 물은 하산을 하는 것입니다. 하산을 한다는 것은 이미 깨우쳤다는 뜻입니다.

두 줄을 합하면, 채우고도 비운 경지와 깨우쳐 하산하는 물이 졸졸졸 말을 하는데, 입산하는 사람은 깨우치고 하산하는 자의 설법을 들어도 못알아듣습니다. 분명히 무언가 입산하는 사람에게 말을 해주는 것인데, 아직 알아들을 기량이 딸립니다. 입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입산하는 사람은 산에 오르는 것도 힘들고 멉니다. 물의 설법을 들을 여유도 없습니다.

푸른 산 다 타도록 숯이 되질 못했으니

온 산에 단풍이 들었습니다. 푸른 산을 다 태웁니다. 태우는 것으로 끝이 아니고, 숯이 되어 태운 보람이 잇고, 쓸모가 있어야 하는데, 입산하는 이는 아직 숯이 되질 못했습니다. 여기서 푸른 산은 젊은 청춘을 의미합니다. 이제 중장년이 된 화자는 일생을 태워 아둥바둥 노력하였으나, 아직 숯의 쓸모가 되질 못하였다는 자책입니다.

언제 빛 좋은 숯을 구워
펑펑 쏟아지는 흰눈 한짐을 해 지고

이제 숯을 생각하며 입산을 합니다. 언제 숯을 구워 한짐 해 지고 하산을 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숯을 구워 하산을 하겠다는 뜻이 이제야 섰습니다. 그도 모르고 살다 죽는 이도 많은데 뜻을 구하는 것은 늦다 할 수 없지만, 입산을 하는 화자는 마음이 급합니다. 숯은 검습니다. 펑펑 쏟아지는 흰눈은 기쁨, 깨달은 기쁨, 숯이 된 기쁨입니다. 검은 숯 한짐 위에 펑펑 쏟아지는 흰눈을 시각적으로 대비시켰습니다.

어둠 아래 고인 숱한 별빛 속으로
하산下山을 할까

어둠 아래 고인 숱한 별빛은 산에서 내려다본 인간세계입니다. 사람들은 그 어둠 속에서 지지고 볶고 삽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숯을 한 짐 해 진 하산길입니다. 저 위에 '언제' 라는 말에 걸리는 것입니다. 지금 입산하면서 언제나 하산을 하게 될까라는 한탄입니다. 그래도 입산하는 마음을 가진 것은 잘했습니다.

입산은 중이 되러 가는 길이란 뜻도 있지만, 그냥 가을 등산길일 수도 있습니다. 가게에 가만히 앉아서 산을 생각하는 것도 입산입니다. 도처에 고인물이나 하산하는 물과 같이 이미 깨우친 각자覺者가 많은데도 알아듣지 못하는 우둔함을 입산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원래는 장년이 된 마음을 쓰려고 했던 것입니다. 어제가 영철이 형님 생신이시라 하여, 꼽아보니 66세가 되시기에, 세상에 뜻을 세우고 펼치기에 아직 늦지 않았음이 생각이 난 것인데, 제목에 장년을 붙이기가 가벼워 입산이라 하였습니다.

왜 이제사 입산이냐 하면, 저희 아버님은 올해 78이신데, 아직 매일 도서관을 다니고, 하안거 동안거 정진수행을 하시며, 세상에 온 뜻을 찾고 계십니다. 일생 식솔을 먹여 살리느라 좋아하는 공부를 할 시간이 없으셨고, 이제 자식들이 모두 솔가하여 보니 늙었으나, 이제부터라도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시겠다 하여, 그새 3000배를 몇번, 동안거, 하안거, 정진수행을 여러차례 다녀오셨습니다. 혼자 고찰들을 돌아다니며 두루 견문도 익히시고, 공부하십니다. 그 연세에 아직도 4-50릿길은 걸어서 다니십니다. 그래도 초행공붓길이라 하십니다. 이제 공부 시작한지 몇년 안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공부는 꼭 불교만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살면서 하고 싶었던 일, 이 생을 기록하는 일도 공부고, 존재의 각성입니다.

아버님 생각, 영철이 형님 생각, 이제 오십이 턱에 다다른 미련한 제 생각, 그런 것들이 엉켜서 이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제사 걸음이 아픈 것을 알게 된 나이, 물소리를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미련한 것이었음을 아는 나이, 빛 좋은 숯 한 짐이면 잘 살았다 말할 것을 알게 된 나이.. 그리고 그깟 돈이 없음에 좌절하지 말고 내 삶이 가벼운 것이었음에 슬퍼해야 함을 어렴풋이 알게 되는 그런 나이가 이제사 입산入山의 나이입니다. 총총.
조성웅
"고인 물은 가득 비었다"
작년 겨울, 노자의 도덕경 중에 도 부분을 읽는데, 비어 있음으로 쓸모가 있다는 문장에 오래도록 마음이 머문 적 있다 그래서 '고인 물은 가득 비었다'는 싯구를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하산하는 물소리 들어도 모르고' 는 오히려 평범해진다. 차라리 '하산하는 물소리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모든 낮은 곳에 스민다' 라든지 해서 '고인 물은 가득 비었다'를 좀더 튼튼하게 했으면 좋겠다. '모르고'에서 담고자 했던 의미는 '산에 드는 길도 멀다'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둠 아래 고인 숱한 별빛'... 좋다. 올려다 보면 수북한 것이 별빛인데, 공간이 뒤집어 져 있다. 이 곳으로 비상하는 것이 아니라 하산하다니, 장년이 된 마음이구나 ㅎ
박상화
하산하는 물소리 들어도 모르고

는 쓰지 않은 졸졸졸이 깨친 말씀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입산자가 하산자의 말씀을 들어도 '모른다'는 뜻으로 물소리에 주안점이 있어서, 윗줄을 부연하는 것보다는 독자적인 표현이 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다만, 가급적 평범한 표현을 추구하려 한 것이 지나쳤는가 싶어서, 다시 읽어보았는데, 쉽표를 하나 찍어주는 것이 낫겠다 생각했다.

하산하는 물소리, 들어도 모르고

로 고쳤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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