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아직 제목 없음)

박상화 2 1,800

 

(중략)

 

끊어진 길, 아직 끊어져 있고

어리는 푸른 그림자 어둠에 떠서

차라리 길이 되고 인광이 되더라도

도저히 침몰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별은 

어둠에 박힌 못이 빠진 자리

두꺼운 어둠에 뚫린 숨구멍

 

고통과 소망이 쌓여 탑으로 선 것처럼

사람도 그렇게 직립하였다

자신의 바닥으로부터 수직의 각도로 선 사람은

중력의 무게를 지고 전진하는 힘이 있다

 

 

(중략)

 

땡볕을 참고 달빛에 흔들리며 쌀은 여무는 것이다

도리깨 매질에 허울을 깎으며 맑은 속이 드러나는 것이다

찬물로 더께를 씻고 끓는 쇠솥에 앉아 뜸까지 들어야 밥이다 

물과 불이 만나 물은 끓고 불은 식으며

단단한 쌀은

차고 뜨거운 것을, 뜨거워지고 차지는 것을 다 품어 안아야

밥이다

 

남의 밥이 되는 것이 그리 힘들다

 

아버지 땀 한 숟가락 뜨고

등 굽은 어머니 한 젓가락 드는 밥

 

밥을 먹는 것도 그렇게 무서운 일이다

 

흙그릇 바닥에 앉아 달빛어린 허기를 가린 이는 

밥 한그릇에 땀 한그릇이 빚인 줄을 안다

땀 한그릇에 밥 한그릇이 빚인 줄을 안다

 

밥을 먹었으니

온전히 남의 밥이 되어야 빚갚음인 것을

서로 밥이 되는 순환이 떳떳함인 것을

밥이 될 것을 생산하지 못하는 백수의 자괴라고 

낮달이 들여다 보고 고개를 돌린다

 

긴 목 빼고 보던 민들레도

그렇지요 그렇지요 주억거린다

 

 

(중략)

 

비 없는 날을 골랐으나 

막노동꾼 큰형님은 못 오시는 벌초 

 

우리도 이산가족 아니랴 

가난은 슬프고 조용한 사변 

막노동판엔 상봉을 합의해 줄 대통령도 없다. 

삶이라는 게 고작 

막군홧발에 터벅터벅 끌려만 가고 있을 때, 

형님 손마디처럼 굵은 막땀방울들 

뚝뚝 절망하고 있었다. 

 

할머님 묏등엔 쑥부쟁이가 올랐어요. 

생전에 이뻐하시던 꽃 

먹지 못하는 건 다 소용없이 하시면서 

죽으면 썩을 몸, 엎드려 

걸레질만 하시더니 

연보랏빛 그 꽃을 안으셨네. 

 

어린 손주들 달래시며 

시커먼 대바구니에 쪄내주시던 

얼굴만한 쑥개떡 덩어리는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았어요. 

사실은 너무너무 먹고싶지 않았어요. 

이제 그 쑥들은 놓으세요. 

 

할머니 안고 계신 꽃도 뽑아내고, 

쑥도 뽑아내고, 

이제 저희는 잊으세요. 하루 세끼 

흰밥은 먹고 살아요. 형은 

못 왔지만요 

 

매번 건성이었지. 

삐죽삐죽 솟아오른 풀잎만 치다 

할머니 품 동그마니 버려두고 

아주 오래된 습성,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치며 살았지. 

침침한 지하 골방으로 파고 들어가 

모자란 잠자기가 바빴어. 

묏등 상수리 낭구 뿌리 채 캐자니 

무덤이 반은 파헤쳐질 판에, 

고집스레 뿌리를 캐며 

이 깊은 가난을. 

 

추석은 거저 오는 게 아니었다. 

없는 놈들에겐 

기뻐해야 할 날들, 왜 늘 돈으로만 오는 지 

왜 그리 빨리 오는 지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지하 골방에서 

조용히 죽음처럼 누워 잠들 순 없을까. 

후두둑 왔다가는 여우비처럼 

무심하고 싶었으나, 

없을 수록 

자유로울 수 없었다. 

손바닥만한 텃밭이래도 있어야 

연보랏빛 꽃 한송이 품을 수 있어, 

죽어야 가능한 일이었으니 

 

하얗게 

날을 갈아들고 

풀을 친다. 

이 질긴 다수의 항변. 

 

(중략)

 

 

겨울 찬바람은 사람들 언발 사이를 지나 더 차가와져서 

어머니 앉은 자리엔 빈 햇살과 살을 써는 바람이 

번갈아 들락거렸다. 

뫼구덩이같은 빨간다라에 칠성판처럼 궤짝널을 늘어 놓고

널에 누운 이면수며 동태에게

어머니는 자꾸 정화수를 뿌렸다

- 살아 나거라, 이대로 죽어선 안된다

수많은 신발들 멈출줄 모르는 시간처럼 지나갔다

궤짝널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하루종일 이면수를 쳐다보는 건

돈도 없는 빈 햇살들 뿐이었다

생선들 몸에서 뚝뚝 돋아내린 바다가

빨간다라를 감돌아 알 수 없는 곳까지 흐르고

길섶돌에 걸터 앉은 어머니 발 밑으로

찐득찐득한 뻘이 반짝였다

 

종일 성수 세례를 받아 정화된 이면수는

새까만 어머니 손등같은 껍질을 쓰고 밥상에 올랐다

하얀 속살만 발라먹고 껍데기는 징그럽다는 투정에

- 옛날에 어떤 부자가 논밭을 다 팔아서 이면수 껍데기만 사먹었대 

- 왜요 

- 이게 그렇게 맛있대

부자가 논밭을 팔아 사먹는 이면수 껍데기를 씹으며

부자가 된 것처럼, 부자가 되길 바랐다

어머니 빨간다라에 든 생선을 다 사드리면

툭툭털고 일찍 집에 오시면 얼마나 기쁠것인가

부자가 되고 싶은 단 하나의 이유였다

 

내가 아직 부자가 되지 못한 어린애였기 때문에

어머니는 늘 밤 깜깜해서야 돌아 오셨다

늘어지는 생선들에게 종일 물을 뿌려주다

갯내에 쩔은 돈주머니도 안 풀고 

새끼들 반가워 끌어 안으면

비린내가 난다고 도망을 쳤다

무거운 빨간 다라를 지고 온 발등에

뻘은 푹푹 패이고 바다가 고였다

 

어머니의 흙은 뻘이었다

 

아버지는

땅강아지처럼 엎드려 고랑을 파고 이랑을 얹으셨다

쪼그려 앉아 흙을 기었다

넓은 등으로 햇볕을 받아

뚝뚝 땀흘려 고추밭에 물을 주었다

오이줄기에 말뚝을 박고 끄냉이를 둘러 묶으며

- 넘어지지 마라, 서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손이 흙범벅이 되도록

대지를 기어 무릎이 까지도록

어둑한 해거름을 업고 흙을 기며 기도하셨다

 

겨울이면 새까만 흙덩이가 되어 연탄을 날랐다

연탄 백장, 400kg이 앉은 리어카를 끌고 밀고

어깨에 머리에 김을 무럭무럭 올리며

산동네 꼭대기 낭가바르팟 봉우리를 올랐다

스무장 팔십키로의 연탄덩이를 지고

아파트 오층계단을 오를 땐

삼층이면 피가 통하지 않고 

사층이면 숨도 쉴수 없는 삶의 무게

힘들어 검붉어진 아버지의 얼굴

오층보다 높은데 있던 식솔의 입은 

중년사내의 어깨를 파내렸다

 

아버지의 흙은 자갈밭이고 연탄이었다

 

가난은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었다

가난은 어머니의 잘못이 아니었다

육성회비를 못내서 교무실 벌을 서게 하는

구멍난 신발을 손가락질하고 놀리던  

얼굴 빨개지는 가난은 

토끼몰이같은 장난이었다

죽어라 도망쳐도 골목은 늘 하나뿐이었고

어느날 막다르면 잡혀 갈기갈기 찢길 것이었으나

그 순간까진 숨도 참아 달려야만 살 수 있었다

화려한 드레스에 반짝이는 진주는 누이의 눈물이었고

도로를 깔고 가는 묵직한 자가용은 형님의 뼈였다

 

가난은 부자들의 장난이었다

 

삶은 흙이었다 노동은 흙이었다

굵디굵은 흙손이어야 한 몫이었다

부러운 굵은 흙손 대신 내 손은 가늘고 흰 무말랭이손이었다

흙과 바꾼 아버지의 등을 파먹고 자란 나는

뻘과 바꾼 어머니의 가슴을 파먹고 자란 나는

호미나 생선칼 대신 키보드를 두드리며 컸고

키보드는 토끼를 모는 리모컨인줄 알았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자판사이를 쫒기고 쫒겼다

아버지가 쫒기던 골목, 어머니를 갈기갈기 뜯던 

그 막다른 골목에 서서

키보드를 두드리지 않으면

나도 찢길 그 막다른 골목에 서서

먹고 산다는 건,

서늘한 목줄기에 끝없이 짖어대는 개들의 이빨을 

가난하다는 건,

공포에 매달린 나를 확인하는 장난이었다

 

텔레비젼에서 보는 

사기꾼, 난봉꾼, 도둑놈, 강도, 강간범, 배신자, 개새끼들이

나였고 나의 가족이었고 이웃이었다

살아 남으려고 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배신과 폭력을 일삼는

그게 가난이었다

대여섯개쯤의 얼굴을 가진 가면의 사나이

성녀와 악녀가 교차되는 아가씨

살아 남기 위해 그럴 수 밖에 없고

자신의 힘으로는 그게 그나마 열심히 주어진 생을 사는 것인 

주변머리없는 가난을 보면서

손가락질하는 그 손이 가난이었다

저 나쁜 년, 그 나쁜 놈 때문에 가난한게 아니라

토끼를 모는 장난때문에 가난한 것을

사냥개의 이빨이

도덕과 체면, 양심, 근면, 성실의 탈을 쓰고

더 부지런히 더 부지런할 것을 짖으며

우리를 몰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막다른 골목에서 찢기면서 알았다

나를 찢는 사냥개조차

사냥개의 탈을 쓴 토끼인 것도 알았다

 

다 찢기고 나서 버려진 사람들

고시원, 쪽방, 벌집, 공원 벤치에서

열심히 쫒기던 날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무료배식을 하며 봉사를 하며

덜 쫒기기를 자위하는 사람들

아예 종교에 넋을 놓고 행복하다는 사람들

 

(중략)

 

시퍼렇게 날을 벼려 

저마다 뽑아든 칼, 

어느 하나 꼿꼿이 서있지 못하고 

절로 휘어지며 살고 지다. 

 

밟힐 때마다 벼려온 날이었건만 

가슴을 태우다, 

태우다 못해 말라 죽어가노니 

 

하늘을 덮으며 짓 밟아오던 어둠도 이기고 

이슬에 벼려 제법 날선 승리의 아침도 있었다지만, 

한데서 살아왔으나 

우리 한번 어깨동무 한적이 없었다면서, 

저마다 흙밑에 묻어둔 사연을 꺼내 보인 적도 없었다면서, 

고개 떨구고 침묵하다 이내 

스러지다. 

 

죽음만이 단 하나의 희망이라 믿었던 풀들만이 

거름이 되었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고개 떨구고 먼저 누워버리던 

풀들에게

풀들에게

 

(중략)

 

그러나 토끼인 바엔

아무도 행복할 수 없었다

바지사장 토끼, 경찰 토끼, 관리자 토끼도

해고자 토끼도, 노숙자 토끼도

아기 토끼도

 

다 똑같은 토끼였다

 

이제 누가 야생의 당근을 그리워하는가

이제 어디가서 흙묻은 감자를 털어

보슬보슬하게 쪄내는 기쁨을 맛볼 것인가

누가 손에 묻은 흙을 감사하는가

땀은 왜 기쁜가

 

지켜야할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잃어버린 줄도 모르면서

악착같이 악착같이 삶을 지키는 토끼들

막다른 골목까지 쫒긴 토끼를 찢어무는 토끼들

 

토끼를 찢는 토끼의 노동은 더 이상 신성하지 않았고

자본주의는 토끼의 피를 먹고 자랐다

 

(중략)

 

원추리 포기처럼 촘촘한 사람들 사이에서

허리를 꺾고 엎딘 뱀과 같이

틈새에서 틈새로

힘겹게 기어 붙이던 삶

캄캄한 집매를 맞고

퍼런 눈 뜬 새벽을 종종 걸어

망망대해 떠가던 빨간 다라.

고등어, 갈치, 언 동태짝 뽀개 담으며

기다리고

평생을 기다리던 좋은 날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였으나

하루 접어 한달

한달 접어 일년, 십년, 육십년

꽃이 언제 필까

언제 꽃이 필까

 

눈도 못뜨는 게 빨간 입 쫙쫙 벌릴 때마다

대신 매를 참고

대신 욕을 참고

분을 삭혀 창란젓 되도록

닳아 무릎뼈 빠지도록

돈이 없어 쩔쩔매던 

돈이 없던 

어머니, 가슴이 뻐개지면서

꽃 핀다.

달빛 들어 베어 버리고 말 저 꽃,

비린 꽃 핀다.

 

(중략)

 

 

가만히 깔려있던 흙이

마디마디 자갈 배긴 바닥이었던 흙이

흙이 일어선다

 

일어선 흙이 

스스로 다시 누울 때까진

아무도 흙을 재우지 못한다고

누구도 먼저 끝낼 수 없다고

 

바닥이 일어서면 

누구나 바닥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흙이 되는 자만 

일어서는 힘을 얻을 것이라고

 

일어서는 흙이

일어선 흙의 등을 짚고 일어서는 흙이

일어서는 흙의 손을 잡고 일으키는 흙이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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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박상화
변함없이 지겨웁고 괴로운 하루하루의 단면을 베어내는 일이 재미가 없어졌다. 기왕이면 정리도 할 겸, 주렁주렁 늘어뜨리고, 자꾸 볶아야 이 끔찍한 기다림의 시간이 갈 것이다. 만사가 귀찮다. 가만있으면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프고, 자꾸 꾀가 난다. 청소를 하고, 땀을 흘리면 좀 낫지만, 그 일도 한정없이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묶인 몸이 어쩔건가. 마구 쓰고 있으면 좀 낫다. 그러나 쓰는 것도 아무때나 무시로 쓸 수 있는건 아니다. 촛점이 없으나, 쓰면 보이길 바란다. 묶인 관념을 글이 제 스스로 풀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언제나 시를 알아보게 될까. 아둔한 길이 참 멀기도 하다. 다만 한잔 술이 간절히 목마를 따름인데, 그조차 비싸서 못 사 먹으니.
김영철
장마가 길고나  음습하고 각이없는 날씨는 안산도 무겁기만 하다네 한 여름 길목에서 모다 폭염이라 나불대지만 진짜 폭염에 사는 사람들은 폭염을 즐기거든 한번 맞아본 매 처음에야 겁나지만 두서너번 맞고나면 내성이 자라는거지  아무리 머리을 싸매 보아도 답은없고 절벽 뿐인 생을 꾸려오신  이땅의 어버이들 땀이 오늘 우리들이 아니것능가 요즘 세태는 아무리 내가 애타게 농사지어 아이들 맥이라고 나도 아까봐 못먹는 작물 갖다 주어도 냉장고에 썩어 자빠지고 엄마에 손맛은 옛적 이야기고 맛집만 찾아댕기는 시절 이라네. 평생 일만 하다보니 막상 놀라 하니 그 방법을 몰르는것이야 시간 관념도 배치도 못하고 허둥인 것이여 햐 ! 고래서 백수는 항상 빠뿌다는것을 알았지.... 고나마 작은 땅뙈기가 있어 새벽이 오고  새들의 오케스트라 음악이 흐르고 홀로 먹걸리 한잔 붇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하루 한페이지 써 내려 간다네. 땅은 거짓이 없고 살도 없지만 작물은 언제나 무언으로 날 가르쳐 준다네 계절을 항상 진실을 몰아오고 정직 하다네 우리에 계절은 어느계절일까?  시는 우리에 영원한 미완성 이네. 터벅 터벅 찾아가다 보면 어느날 시가 찾아와 만나는 날 기다리며 더 먼길 지치지 마세나 어연 하루 노동 끝내고 집에서 술한잔도 누구 눈치 살피며  넘기는 세월이 돼얏네  이도 사는 맛 아니것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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