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물 팔아 먹고 사는 가게에 들어와 물 동냥을 하면
물 한잔 정도는 주어야만 인간의 도리일 것 같고,
술 팔아 먹고 사는 가게 앞에서 술 동냥을 하는 술중독자에게는
술을 한병도 안 팔아야만 인간의 도리일 것 같은데,
곰이곰이 생각해보니
먹고 사는 건 인간의 도리와는 별개의 문제 같으다.
청빈을 자랑하던 선비들 모두 처자식을 굶겼으니
인간의 도리를 지키며 어떻게 먹고 살 수가 있겠나.
맑고 푸르른 가난이란건
굶을 밖에 어찌할 수가 없던 사람들이
제 부끄러움을 감추고자 지어낸 허상이었구나.
슬프다, 청빈淸貧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지 못하고
술중독자에게 술을 팔아야 하니
인간의 도리를 묻는 아이에게
먹고 살아 남는 것이 것이 인간의 도리임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2014.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