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중년이 된 친구에게
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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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6 14:29
빌딩이 울창한 포장 국도를 따라 어린시절 나무 전봇대가 서 있다
콜타르는 낡아서
아침 안개거나 빗속에 선 전봇대는 붉지만
햇살 아래선 나무 속살 그대로 뽀얗고
밤에는 꼭지에 달린 가로등 비춰
마른 뼈처럼 줄지어 희다
어쩐지 나는
저 전봇대들이 뿌리를 감췄을 것만 같다
가지 잘리고 껍질 벗겨져
꼼짝도 못하게 알몸으로 묶였으나
땅 밑으로
땅 밑으로는
축적된 경험의 뿌리를 뻗고 있을 것만 같다
숨을 곳 없고 뿌리 내릴 곳 없는 창공에
검은 들새 열댓마리 후루룩 날아
밤으로 내려 앉는 시절
붙잡고 울어줄 취객 하나 없는 적막을
뿌리를 뻗으며 이기고 있을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참고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한 잎이 나기만 나면
소나기 한소끔 쏟고 그칠 시간에
숲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면서.
숲을 타고 오르는 넝쿨들이
묶인 철선을 삭여버릴 것을 생각하면서.
2016.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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