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사이프러스

박상화 2 1,318

 

 

어떤 나무가

항상 지쳐보이는 어떤 나무가 있다면

그래도 넘어지지 않는 그런 나무가 있다면

한뼘 건너 박힌 뿌리 한 끝 

떨리는 가지 한 끝

거칠게 비틀린 몸통으로 기우뚱 서있는 

 

불길처럼 솟아난 바늘잎

화악 타 버리지 않고

서 있는 동안은 타 오르고 있는

비탈에 삐뚜름 선 사이프러스 한 그루가

지쳐보이는데

힘겨워 보이는데

한번도 넘어지지 않고

주저않지 않는 그 나무가 가슴에 박혔다

 

나무도 희로애락이 있어

가난한 날, 풍성한 날이 있는 법인데

 

사이프러스, 

길가에 홀로 선 어떤 사이프러스 한 그루가

처진 한쪽 어깨에

굵은 손마디를 얹고

절름이며 걸어가는 

느릿느릿 걸어가는 사이프러스 한 그루가

 

기울었으나

넘어지지 않는

이를 악문 사이프러스 한 그루가

온 힘을 다해

오래오래 서 있자고

서서 낡아가자고

그러면 슬픔도 낡아질 거라고

 

굽은 허리

굳은 주름이 꿈쩍도 안하는 것이었다

 

 

2016.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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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조성웅
"지쳐보이는데/힘겨워 보이는데/한번도 넘어지지 않고/주저않지 않는" 사이프러스 한 그루가 내 가슴에도 박혔다
박상화
그 사진을 올려야 하는데. 울 동네에 실제로 그렇게 삐뚜름 크는 사이프러스가 불같이 생긴게 하나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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