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철거

박상화 0 1,119

 

남루한 천장에 푸른 비 새면

거친 장판에 노란 양재기, 냄비 줄세우고

가로로 모로 누워도

코풍선 부는 아이들의 잠은 깊고 달았다.

 

붉게 녹슨 물 걸러 마시고

연탄가스에 머리가 띵해도

땟국진 벽지에 흰 상장이 올라붙고

평상에 막걸리 한병, 김치 한종지면

어른들의 고단도 견딜만한 것이었다.

 

굽은 골목에서도 집 길은 잃지 않았고

비바람 사나워도 허름한 벽을 뚫진 못했다.

불투명한 비닐 창문 안에서도

가족은 끌어안고 선명하게 따뜻했다. 그것이

살아나갈 힘을 주는 

둥지며 보루였고 삶의 원천이자 전부였다.

 

흐린 전구 아래서도

구멍난 양말같은 삶을 꿰매 다시 신었고

이웃은 

동네 밖에 나가 받은 상처와 설움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목사고 의사였다.

 

철거는

헌집을 헐고 새집을 짓는 일만이 아니다.

 

재개발의 논리로는 그저 낡은 마을이겠지만

이 낡음도 수십년의 노고로 겨우 장만한 것이며,

낡았으나 소중한 것이며, 

어떤 사람들의 평생이 손때묻은 낡음이다.

 

낡은 건물은 헐 수 있으나

수십년 다독여 온 이웃과 꿈과 가정도

같이 헐어져서야 되겠는가?

실향민처럼 흩어져 서럽게 떠돌 미래를

더 낮고 좁은 지하방으로 가라앉을 미래를

혹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뿔뿔이 흩어질 가정을

넋 놓고 앉아서 보아야만 하는가?

 

공치던 날 집안에 가만히 들어온 햇살과

채반에 담겨오던 이웃의 고구마며,

무릎을 뚫고 무럭무럭 크던 아이들의 꿈, 

- 아이들의 꿈은 훌륭한 사람이 되서

모든 가난의 등짐을 내려주는 것이었다. -

고향이 된 정감과 푸근함이며,

가난하다고 해서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삶의 자양분들까지

함부로 철거되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햇살도

바람도

초록 비도

눈사람도

깔깔거림과

연탄재도

등을 지지던 낡은 구들도

아버지, 어머니도

돈 앞에

가난 앞에

가난 앞에

 

 

2016.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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