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공장 귀퉁이 무릎꿇고
엎드려 있던, 겨울기숙사
가방끈 짧고 부모 잘못 만난 게 제일 큰 죄라 복창하고
대가리 박고 신고식 올리던 첫날부터
알아서 기고 바로바로 찌그러져야 쓴다 배웠다
십 년 십 년 또 오 년
오그럭 우그럭 밟는 대로 찌그러져 주며 살아봤지만,
‘잘살아 보세’는 첨부터 ‘개꿈’
기지 않고 찌그러질 줄 모르는 이들은 진작에 썰려 나갔다
내 자식놈도 세상에 나오면
기는 짓부터 배울 거라는 현실만
수십 년 긁히고 찢긴 빈손에 남아 있었다
조그만 창(窓)조차 꺼먼 뺑끼칠을 해 놓고
낮에도 알전구로 불 밝히는 공장
종일 알 낳기만 집중시킨 양계장 닭처럼
일용할 햇빛도 허락되지 않았다
우리가 뒤집어 쓴 폭력과 모멸 중 합법 아닌 게 없었고
우리는 서러워 우는 것조차 불법 아닌 게 없었다
슬픔만 뽀얗게 뒤집어 쓴 채
날마다 가위눌린 삭신만 쿨럭거려야 했다
비슷한 절망들이 켜켜이 앞길을 가로막았지만
감자탕집에서 빈 소주병이나 깬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전봇대 붙잡고 운다고 사라져 줄 현실이 아니었다
빛이 새나는 출구는
햇빛 쨍쨍한 소비의 거리에 있지 않았다
어둔 공장, 한 개 알전구 불빛 아래 선
동료의 얼굴 속에,
아무리 기다려도 철수하지 않는 겨울과
켜켜의 절망을 깨러
나아가는 발걸음, 장단을 맞춰보는 속에
있었다
우리 아무리 가난한 공단이래도
골목마다 담장마다 언 땅을 치고 오르는 파릇한 자존심은 있었다
소비가 아닌 노동으로 세상을 살아 나가는 알통도 있고,
동료가 썰려나가는 데 다물고 모른 척 찬동해 줄 수가 없는 입도 있고,
바둑알 나누듯 정규비정규 갈라놓고 입맛대로 씹어먹게 놔두지 못할 팔뚝도,
퇴근길 소줏잔에 잠기던 고민거리 들어줄 귀도 있었다
있었다 아무리 가난해도 필요한 건 다 있었다
우리들, 언손 언발 부벼가며 걸어 온 길이래야
산동네 연탄재길뿐이었지만,
허기진 눈보라만 겹치던 세월, 그래도 뚫고 왔다
거친 숨 뿌득뿌득 밟고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다
잔뼈 굵은 세월의 허리를 타고
꽃 한번 피워보려 숨 참고 숨 참아 물오르고 있었다
아아 이제부턴 봄이다
온 힘 다한 꽃망울 하나 터트려
공단 전역에 봄을 선포하는 봉화의 일렁임으로
죽어도 살아야겠다
소금알 나눠 먹으며 끓여대던 쇳물,
뺏기고 비어버린 뱃속에 철철 부어 담고 나서면
이글대는 우리 앞에
길이여, 와서 엎드려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