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제사상 앞에서 절 한번 해 봤으면.
곱게 자른 한지에
향기로운 먹을 찍어 정성스레 지방을 쓰고
조율이시 어동육서
형님, 이렇게 놓는 게 맞나요? 물어가며
진설을 하고
정한 쌀을 담아 향을 피우고
큰방엔 노인들 말씀 나누시고
대청에서 청년들이 병풍을 치고 지방을 쓰는 동안,
부엌에 가득한 밥 김, 떡 내음, 갈랍과 동태전 부치는 소리,
마당엔 아이들이 자치기, 비석치기를 하며 놀고
뒤늦게 청주병을 들고 도착한 사촌도 반기고
대청에 붙은 쪽마루까지 늘어서서
수저를 고르고 절을 한다.
유세차 중추가절에 자손들이 모여
올해도 조상님들 덕에 한해의 결실을 얻어 햇곡식으로
상을 차리고 모여 추모하고 감사드리옵니다. 작은 음식이나마
흠향하시고 기쁘게 여겨 주시옵소서, 상향
다시 수저를 고르고 절을 하는데
사촌의 세살배기 막내가 절을 따라하느라
눈치를 보다 아주 엎드린다.
그 모습에 모두 웃음이 번지고,
서열따라 음복 한 잔씩에
벌써 불콰해진 큰아버님께서는
대문간에 나가 서서 담배를 한대 태우시며
아직 못 온 사람이 혹시 이제라도 오려나
앞 집 감나무 가지를 지나
먼 동구밖으로 시선을 붙이신다.
201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