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겨울, 우포가는 길

박상화 0 1,203

 

서울남부고속뻐스터미널에서

경남 창녕 우포가는 새벽 버스를 타고

몇시간이나 걸려 내려가리

 

승객은 모두 잠이 들고

설레임도 고단하고 뻐근할 즈음

마침내 푸른글씨의 창녕시외버스터미널에 안착한 버스가

먼 길 달려온 엔진소리 헐떡이며

잠 덜 깬 사람들을 부리면

장바구니 무게에 허리가 굽은 터미널의 언어들이

와글와글 반겨주리

 

창녕서 우포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장미꽃 커튼을 드린 중화요릿집

뜨거운 짬뽕국물이 헌 속을 지져주리

가까운 시장을 어슬렁 거리다

오랫동안 나를 기다린 골목을 만나

친구와 함께 가는 것처럼 우포로 가리

 

빨간 자전거를 탄 뚝방길은

세월을 견디느라 바싹 마른 갈대들

흰머리칼 날리며

어머니처럼 반가운 손짓으로 어릴적 내 이름을 불러주리

자박자박 걸으며 만나는 소리들

너 없이 오래도록 여기 고여있었노라고

우수수 우수수 전해 온 수천년전 노래를 들려주리

 

오늘도 잘 놀았다고 

늪을 차올라 둥지로 가는

새들의 귀갓길은 늘어지는 그림자가 없으리

내 걸음 소리가 나를 따라와

저물어 더 빛나는 것들도 있다고

한마디 던지고 말이 없던 친구처럼

우포에 누워 천천히 밤을 끌어 덮으리

 

물안개 짙게 피어

먼 것들 아직 깨지않은 아침이면

가까운 나무는 검게 마른 가지를 들어 

새를 날려주리

 

푸드덕

열댓마리 새가

안개 속을 날아 오르면

세상도 따라 떠오르리

우포길에 뿌리처럼 발바닥을 박고

나는 세상이 떠 가는 새벽을 보리

 

거기 얼굴 붉은 따오기 서너마리

흰 날개 밑에 숨긴 붉은 날개를 펼쳐

같이 가자 따옥따옥 날아오르면 좋으련만

해방 전까지 우포 살던 붉은 새 따오기가

쌀 대신 피가 뚝뚝 떨어지던 나라에서 자취를 감춘 것은 

그 맑고 붉은 속이 시끄러워서 였으리

 

어부를 따라

인적없는 나의 시간을 거두러 가리

세상이 뭐라해도

이 물길을 따라 뿌려둔 나의 그물로

내게 오는 물고기들을 거두리

장강의 뗏목지기처럼 나는 꿈을 가졌노라

한개 장대를 들고 묵묵히 밀어 온 길

늪길에도 꼿꼿이 서서

중심을 잃지 않느라 너 애썼다며

내 마른 등을 안아주는 우포의 숨결을 들으리

 

수면에 

내가 아니라 우포가 비치면

우묵하여 고이고, 고여서 거두어

물을 마시는 소가 보이면

돌아가리

하룻밤 지내고 어찌 우포를 보았다 말할까마는

거기 저물도록 나를 기다린 어릴적 친구를

만나고 왔다 말하리  

 

우포를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른 나무가 날려주던 새들

푸드덕 푸드덕

힘찬 날개짓 소리로 따라 올 때

또 와, 힘들면 또 와,

지친 어깨에 돋아나는 그리운 얼굴이 있으리

내 입성은 남루하겠지만 

우포처럼 맑은 소주 한잔의 힘으로

나는 또 세상을 떠메고 가리

 

 

201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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