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10월 - 7월의 아버지

박상화 1 1,153

 

 

 

아침녘, 보리논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허리를 펴니, 

신작로 길을 따라 7명이 한쪽 손을 엮인채

낯 익은 순경을 따라 걸어가다가

이리오라 손짓을 하는데, 아버지셨죠

 

아버지는 종이지갑을 건네주고

말씀이 없으셨어요 

돌아서 

뿌연 신작로 굽이져 더는 보이지 않는 데까지

하염없이 걸어가셨지요

 

살구재 넘어 안계지서까지 황톳길 40리

묵묵히 끌려가신 아버지

그 먼 아버지의 뒷모습이

마지막이었어요

 

그날, 

그리고 다음날

또 다음날, 그 다음날

기다려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으시고

마지막인줄 알았더라면 따라 갔을 것을

아버지가 도망갔으면

우리가 죽었겠지요

 

빨갱이 자식이라는 손짓과 

눈빛에 쫒겨

마루 밑에 숨어 살아온 세월

우리를 살리려고 죽은

아버지 젯상을 차리는데 60년이 걸렸어요

침묵하고 

침묵하고 

침묵하고 살아야 했어요

 

손주가 교사임용에 탈락했을 때도

짐작했지요, 입을 다물고

목을 타고 넘어 흐르는 강물을

꾹꾹 삼켰지요

 

살아서 언젠가

아버지 얘기를 할 날을 기다리며

60년을 기다리며

참았어요, 오늘

처음으로 차린 아버지 제삿상 앞에서

마흔셋 아버지 두툼한 손으로 

열일곱 더벅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그날을 꺼내고

그날 보리논에 불던 더운 바람도 꺼내 올리고

엎드려

한참을 울었어요

아버지

죽으러 가는 줄도 몰랐던

열일곱살 어린 아들이 되어

 

열일곱살로부터 60년이 지난 

열일곱살 어린 아들이 되어

 

 

2016.1.22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

박상화
* 역시 류경완씨의 증언을 토대로 쓴 아버지의 기록입니다. 저는 유튜브에서 여러 동영상을 보며, 참 의아한 것중 하나가, 사형장에 끌려가거나 죽으러 가는 길인줄 아는 사람들이 표정이 밝아요, 심지어 웃고 담배피고 자, 고만쉬고 일하러 갈까 하는 듯이 일어나 사형대에 묶입니다. 아, 저게 뭘까, 왜 저럴까. 묶이는 동안도 아무 저항도 없습니다. 심지어 줄 맞춰 발맞춰 갑니다. 촬영만 끝내고 살려준다고 거짓말을 했나 싶을 정도로 명랑한 죽음입니다. 사형장엔 미 대사도 나와 잇고, 미군 종군기자가 촬영을 합니다. 이 의문은 두고 풀어야 하겠지만, 아무튼, 이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저는 이 시를 뽑아낸 것입니다. 아래 링크했지만, 원 이야기에는 도망갈 수도 잇었던 아버지가 왜 안도망가고 낮잠자다 잡혀갔는지와, 아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걸 저는 그렇게 이해했지요. 아버지는 도망가면 한몸은 살겟지만, 가족이 죽을 것을 알고 순순히 죽으러 갔다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아남기 위해 침묵을 지키며 살아왔다고. 60년만에 처음 비로소 제사를 지내며 열일곱으로 돌아가 아버지를 불러 보는 일흔일곱의 아들이 참 눈에 밟혔습니다.
카테고리
반응형 구글광고 등
최근통계
  • 현재 접속자 4 명
  • 오늘 방문자 269 명
  • 어제 방문자 414 명
  • 최대 방문자 2,936 명
  • 전체 방문자 462,961 명
  • 전체 회원수 15 명
  • 전체 게시물 15,811 개
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네이버밴드에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