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귀향

박상화 0 1,031

 

 

 

날짜는 몰라

써레질 할 때였어

 

바쁘게 들밥을 해 이고 나가려는데

순사들이 들이 닥쳤지

 

그래, 그날 그냥

써레질 하다말고 밥도 못 얻어먹고

끌려갔지

 

돌도 안된 애기를 업고 우두커니 서서

보았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말도 안해주고

 

1943년 5월, 

그렇게 남편은 트럭을 타고, 배를 타고, 다시 기차를 타고

북해도 탄광으로 끌려갔다

 

우리 큰아들 죽으면 너도 나도 다 죽는거라고

주재소 징용장부에 이름을 써 낸 구장놈에게 

낫을 들고 을러대던 아버지 울음소리도 모르고

 

왜 잡혀왔는지도 모르고

왜 탄을 캐야하는지도 몰랐다

안하면 맞아죽고 굶어죽고

도망가면 개밥이 되고 찢어발겨져 철조망에 걸어놨다

 

추워요, 어머니

배고파요, 어머니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여름, 가을, 얼추 3년이 다 되가던 1945년 10월 초순, 

다시 기차를 태워, 배를 태워

부산항에 내려 주었다

 

수중에 돈은 한 푼도 없고, 

3년간 일해 받은 

일본군 전표 한다발은 쓸 수도 없었다

 

걸었다

걸었다

걸었다

집을 향해 걸었다

 

낮에는 빈 집이나 계곡에 숨고

밤에만 걸었다

사람을 만나면 논두렁에도 숨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몰라 무서웠다

끌려가던 그날처럼

이유도 뭣도 모르고

다시 끌려 갈까봐 무서웠다

 

지옥굴같은 탄광으로 또 끌려가게 될까봐

무서웠다

얻어도 먹고 훔쳐도 먹고

옷은 다 찢어지고 헤지고

맨발이었다

 

매일 꿈 속에서 그리던 고갯마루

꿈 속에서 

수백번도 더 넘던

- 아이고, 얘 너왔니, 왜 인제 왔니

꿈 속에서 어머니를 만나

큰 절을 올리던

한장고개를 넘을 땐

맨발이었다

1946년 1월, 소한 추위를 

맨발로 뚫고

 

해방이 됐다는데

동리에서 같이 간 이들도

건넛 동리에서 끌려간 이들도

다 돌아 오고

죽은 이들은 사망통지서로도 왔다는데

죽었는가 살았는가

어째 우리 아들만 안오는가

 

어머니는 매일

춥거나 눈이 오거나

동구 밖 고갯마루까지 나가

손그늘을 하고 아들을 기다렸다

인제 오려나

왜 안오나

죽었는가...

 

 

2015.1.16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

카테고리
반응형 구글광고 등
최근통계
  • 현재 접속자 1 명
  • 오늘 방문자 365 명
  • 어제 방문자 414 명
  • 최대 방문자 2,936 명
  • 전체 방문자 463,057 명
  • 전체 회원수 15 명
  • 전체 게시물 15,811 개
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네이버밴드에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