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10월 - 아비대신 죽다

박상화 0 1,034

 

 

 

할아버지는 

오른손으로 왼손을 묶어

무거운 뒷짐을 지고 

오랜 시간을 거슬러 가듯

한발 한발 눌러 밟으며

산을 올랐다

 

경남 의령군 정곡면 막실고개

 

1950년 7월, 흙먼지에 떠밀려 

트럭이 오고 또 트럭이 왔다

검은 얼굴, 죽음을 보는 흰 눈빛

보도연맹으로 묶인 사람들은

뒷결박을 지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뛰어 내리는 순간처럼 

트럭에서 내리고 또 내렸다

 

줄줄이 엮어 산으로 끌고 가려는데 

북망산 길, 도살장 입구

공포에 질린 눈빛들이 안 가려고 버티니까,

- 큰길에서 풀어줄 수 없으니 산에 가서 풀어준다, 

- 살려준다,

살려준다, 살려준다는 속삭임에 

말을 알아듣고 말을 믿은 양민들

숨조차 참아 오른 

길 없는 산 속

탕탕탕

 

한참 있다가

다시 한번 탕탕

 

키가 작은 아이가

제 아비 대신 와서 죽었다 한다

키가 작아

안 죽고 넘어져 있으니까 탕탕

 

중학생인가, 고등학생인가

학생이라 카드라, 운동화를 신고 

 

 

201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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