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햇살은 그림자가 그어놓은 경계까지만 온다.
햇살이 만든 경계는 선명하다.
경계가 선명하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경계는 좌표를 보여주기에 고마웁다.
이 햇살의 경계에서는
누가 그늘에 있는지, 누가 햇살에 있는지
모든게 선명하다.
밤이 오면 경계가 뭉개진다.
어둠이 경계를 지워버린 것이다.
경계가 지워지면 좌표를 잃는다.
좌표가 없으면
나아가는지 물러서는지 알지 못한다.
다시 경계가 선명해지기를 기다리며
어둠 속에서 그가 서럽게 운다.
어떤 사람들은 경계가 두렵다.
경계는 그들을 드러내기 때문에 불편하다.
환한 대낮에도 경계가 자꾸 뭉개져 가면,
부정한 것이 지워져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울기를 멈추고 그는 분필을 들어
농성천막의 테두리에 결계를 그었다.
소음 속을 떠다니는 귀신들이
그의 천막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다시 좌표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경계를 뭉개버린다 해도
양심에 그어놓은 선은 뭉갤 수 없다고
선언하기 위해서,
길고 어려운 싸움이지만
사람들은 그의 눈물에 빚이 있다.
그것이 무거운 짐을 진 사람에 대한 공평함이다.
아아, 무거운 짐을 지고 섰는데
경계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얼마나 무겁겠는가?
그로인해 나는 경계를 뭉개는 자들을 미워하게 되었다.
2015.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