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양철시대

박상화 0 1,261

 

 

어려선 양철깡통을 따라 다녔지. 

분유깡통을 들고 구걸하는 아이, 

식용유 깡통을 메고 물뜨러 가는 아버지, 

지게에 진 깡통가득 선지를 팔러 다니던 아저씨,

양철도락꾸에서 뿜는 소독약을 따라 다녔어.

 

양철 쓰레받이 만드는 숙제를 하다가

납땜용 인두가 없어서 젓가락을 연탄불에 달구다가

연탄가스에 취해 동치미 국물을 마시고 살아났다지.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받아 적으며, 

밤새도록 버리고 다시 쓰는 연애편지를 따라 다니다가, 

양철로 된 반합, 양철로 된 수통을 차고 양철로 된

군대를 따라 다녔어.

 

양철 드럼통을 잘라만든 주점에서 연애를 하고

양철지붕 아래서 사랑을 하고

양철로 된 도시락을 양철난로 앞에서 데워 먹으며

양철로 된 택시를 몰고, 양철로 된 버스를 따라 다녔지.

양철 솥에 고두밥을 찌고, 양철 도라무통을 밀고 다니며

양철로 된 낮과 양철로 된 밤을 따라 다녔지.

양철 조각 같은 밥을 먹고

일요일은 그것도 없어서 고구마를 먹고 일하면서

양철부스러기 같은 수당을 따라 다녔어.

 

살아 온 길바닥에 어찌 양철만 있었을까 마는,

내가 따라 다닌게 양철뿐이었겠나 마는,

전쟁이 중단된 나라에 태어나

구호물자로 만든 세월같은 양철의 시대를 살았고,

양철처럼 살았어.

찌그러지면 다시 펴서 쓰고, 잘리면 이어 붙여서 쓰고.

 

시방도 양철광고탑 위에 올라

작열하는 태양에 벌겋게 구워지는 시간을 뒤척이며

근로기준법을 지키라 목쉬어 외치는데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양철의 시대는 끝날 줄을 모르니,

연탄가스에 중독된 세상

흐릿한 정신 번쩍 들게 할 

동치미 국물같은 희망버스를 기다리네.

 

2015.5.31

 

* 이 시의 내용은 부산시청광고탑에서 고공농성중이신 송앙드레 님의 개인사와는 관계가 없이 시절의 이야기가 섞여 꾸며진 것입니다. 읽으시는 분들의 착오가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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