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마트 계산대에서

박상화 0 960

 

 

 

무겁고 긴 발을 끌고 들어와

시간의 목을 쥐고 걷듯이 가게를 한바퀴 돌고

마침내 천원짜리 아이스티를 한개 갖다 놓고

꼭 다문 지갑을 열어

보풀이 인 고지서들을 주섬주섬 꺼내놓다가

지갑의 바닥엔 바닥뿐임을 확인하고는

다시 주워 담는 동안

여기저기 비져나온 살들 숨쉬며

오래 묵은 번뇌를 흘리고

퉁퉁한 큰 손이 작은 호주머니를 몇번 파더니 

우물 밑처럼 깊은 곳에서 건져 올린 건 

먼지, 단추, 돌멩이, 그리고 수많은 주름을 가진

지전 한 장!

다시 먼지들을 주머니 깊이 묻어두고

두 손을 받쳐 아이스티를 가슴에 품고

느릿느릿 무겁고 긴 발을 끌고 환한 세상으로 

나가시는 기나 긴 그림자

 

 

2015.5.25 부처님오신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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