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차광호

박상화 0 971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앉아있다.

가장 높은 곳에 앉아 하늘 가득 358개의 해와 

358개의 달을 붙여 놓고 기다린다.

매일 그에게는 1개의 해와 1개의 달이 더 생기지만

그가 기다리는 것은 더 많은 해와 달이 아니었다.

달에서는 날마다 잎사귀가 하나씩 자라났다.

푸른 밤, 푸른 달, 푸른 잎사귀

달빛이 들어 서늘한 푸른빛을 가진 잎사귀였다

처음에 그가 그 높은 곳에 올랐을 때

시신처럼 차가운 콘크리트였던 굴뚝

잎 하나 없던 굴뚝

타는 여름이 머물다 갔다

가을이 잠깐, 기나긴 겨울이 와서

눈과 얼음을 쏟아 붓고 갔다

기억할 수도 없이 많은 바람이 다녀갔다

바람은 날마다 그의 귓전을 때렸다

잠시

벌이나 모기가 머물다 떠났고

눈사람이 머물어 웃어주다가 떠났다

차가운 굴뚝의 꼭대기에 358개의 잎사귀를 

한 잎 한 잎 붙이면서

그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자본과의 전쟁터를 전전하다 어디선가 죽었는지도 모를

어느 도시의 길바닥에서 잠들었는지도 모를

아니면 여전히 어두운 도시의 콘크리트 밑에서 뿌리를 뻗고 있는지도 모를

 

그가 적을 기다려 왔는가

아니다. 그는 동지를 기다려 왔다

 

숨죽여 엎드린 공장을 함께 깨우고

사람의 피를 요구하는 자본의 장기판을 엎어버리고

빼앗기고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 

함께 어깨 걸어 나머지 생을 향해 전진할. 

그동안 그의 곁을 머물다 간 것은

모기였다, 벌이었다, 상추였고, 눈사람이었다.

앵앵거리는 모기였고, 

말없이 초록빛을 들어 보여주던 상추였고,

웃을 뿐 말이 없던 눈사람이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그 높은 곳에서

아직도 그가 기다린다.

동지- 라고 불러 줄 사람의 말

동지- 라고 부르는 사람의 함성소리가

그가 딛고 내려 올 계단을 만들고

그를 내려줄 때까지

 

그가 적을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다. 그는 동지를 기다리고 있다

 

 

2015.5.19 - 358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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