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봄의 바닥은 차고 질척하네.
응달의 수선화는 몽우리도 맺지 못하고,
민들레도 추워 꽃을 접었네.
연한 벚꽃잎은
실금같은 비에도 져서
벚나무 뿌리는 분홍빛 절망으로 덮였네.
배를 실은 아비의 수레는 나아가지 못하고
우는 누이의 삼보일배는 자꾸만 가라 앉네.
어린 것과 밥그릇을 마주하려고
사람들은 모진 삶을 참는 것인데
어쩌라고 빈 집에 봄만 다시 와
머리맡에 앉아 꽃을 피우나.
아비란 아비는 죄다 장님이었네.
봄의 바닥을 인양하여 닫힌 문을 열어주게.
내 어린 꽃에 불을 켜주게.
빈 집에 찾아온 이토록 차가운 봄을
어찌 눈감고 맞이 하라는가.
2015.3.24
-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故이승현의 아버지(이호진)와 누나(이아름)의 팽목항에서 청와대까지 삼보일배 삼십만배 기원에 부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