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분홍도서관

박상화 0 1,049

 

분홍빛 화사한 봄, 잠비가 잦아라.

빗소리 후두둑 돋아 파란 낮잠에 잠기면

노란 개나리 받쳐든 초록 그늘이 어여뻐라.

 

초록그늘 아래에서 맑은 책을 펼치니

눈 뗄 수 없는 해고노동자들의 말라붙은 핏빛

책에 번진 눈물을 쌓아 분홍도서관을 짓겠다 한다.

 

아빠는 굴뚝 위에서 초록열쇠를 깎고

아이와 엄마는 굴뚝 아래에서 분홍자물쇠를 건다.

보는 이가 시름깊어 탄식하기를

언제나 만날꼬, 저 열쇠와 자물쇠.

 

이만육천개 벚꽃처럼 피어라, 사람의 마음.

분홍 도서관 짓는 소리 분홍분홍

봄 꽃 열리는 소리 보글보글

두 손 마주 잡으면, 꽃잎 날리듯 열리리 저 자물쇠.

 

 

2015.3.21

 

*잠비 : 낮에 낮잠자게끔 잠깐 오는 비.

 

* 또 하루 멀어져 간다. 꽃잎지듯 한 낱 한 낱 떨어져간 날이 백개째다. 

그 백일동안 시퍼렇던 고드름이 지고, 날개돋듯 가려운 봄날이 완연해졌다.

언제나 내려와 처자를 만나 볼꼬. 하루가 또 소식없이 접히는 것이 이리 아깝다.

때가 되어야 한다고, 마음을 내려 놓아야 길이 열린다고, 아까움도 욕심이라고,

기다림이 그냥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고.. 어떤 말의 위로도 저 천길낭떠러지의 고통들 앞에서는 한갓진 가얏고소리 밖에 안되었다. 위로의 말잔치도 이젠 미안해서 못할 지경이다. 화사하게 쓰기 시작한 글도 생각할 수록 어두워진다.  

천지가 아비규환의 지옥이다. 보는 눈조차 찢어질 듯하다. 힘을 보탤 여력이 있는 사람은 자물쇠 하나 걸고, 책 한권 사주는게 큰 덕을 쌓는 일이다. 잡문이라도 쓰고, 악쓰고 노래라도 부를 일이다.  

마름의 완장을 찬 너의 좁쌀같은 권력의 무명이 답답하구나.

이만육천개 자물쇠를 지고 팔만사천겁 무간지옥을 돌고싶지 않거든,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다오. 이미 쌓인 너의 악업이 태산보다 무겁다.

네가 종교인이 아니라 신을 믿지 않는다해도, 그렇다고 네 죄를 기록하는 귀신이 없겠느냐. 

 

- 쌍용자동차 이창근의 굴뚝농성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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