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거둘 것 없는 가을은 쓸쓸하다
저 혼자 부풀어 오른 달이
밤 하늘에 걸리도록
우리의 들엔 잡초만 무성하구나.
낫 하나 갈 줄 모르고
호미 한번 쥐어보지 않고
취하고 토하며
세상을 굴려간다고
거나하게 전태일을 씹고 마셔온 여름을 지나
이제 빈 손의 가을이다.
잡초는 키를 넘겨 자랐고
밤을 잊은 술꾼의 무용담에
아이들은 숨막혀 죽어가는구나.
전태일의 불꽃을 따먹고
침만 튀길 줄 알았지,
아무것도 키운 것 없이
"어른들이 우리를 지켜줄 줄 알았다"던
올망종망한 어린 것들을 앞세우고
쓸쓸한 폐가에
겨울이 온다.
2015.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