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위로만 자라던 풀이
자라면 뜯기고
자라면 뜯기고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옆으로 굵어지는 걸 생각해 냈겠지요
굵어지는 것만으론 살 수 없어
잎을 내고,
잎을 뜯기지 않으려고
쭉쭉 키를 키웠겠지요
그래도 뜯기니
쓴 맛도 내고
바늘잎으로 오무려도 보고
가시도 달아보고
살아 남으려고
도토리 솔방울 같은 자식들 품고
뜯기지 않고 살아 남으려고
그 거칠고 험난한 길을
가만히 바라보다
나도 나무도 말을 잃었지요
곁에 등 기대고 앉아
풀이 나무가 된 게 혁명이라고 생각했지요
2015.11.23
* 현대과학이 밝혀내기를 풀이 나무가 되었는지, 나무가 풀이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풀은 수직으로 자라고, 나무는 수평으로 자란다. 뜯기고 또 뜯기면서 풀이 내린 고뇌의 결단은 뜯어먹지 못하게 수평으로 굵어지는 것이 아니었을까 상상하여 봤을 뿐이다. 뜯기고 또 뜯기면서 살아 나갈 길을 찾아내는 일,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일, 그런 것이 진짜 혁명일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대표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체질을 바꾸는 일이다.
나무가 견디지 못해 풀이 되었다 해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