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포도나무
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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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7 14:34
뿌리를 박고 선 땅은 내 것이 아니었다뿌리조차 내 것이 아니었다
낯선 뿌리에 접붙여져
몸뚱이만으로 기어올라가야 했다
눈이 날 때부터
내 삶을 구성할 가지들은 전지剪枝되고
하나 남은 가지로 기어가는
생존의 진격進擊
마디마다 탱탱한 포도송이
실적을 못 채우면
마른 포도잎, 해고통지서처럼 떨어졌다
힘겹게 휜 허리 잘려나갔다
지은 죄가 얼마나 많은지
십자가처럼 양팔 벌려 묶이고
포기하고 쓰러지는 일도 허락되지 않았다
살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삶
꽃이 피고
영그는 열매조차 자본의 영광일 뿐
비틀어진 허리에 고통을 새기며
잘려나가는 날까지
푸르고 탱탱한 청춘관을 쓴
은총의 나무였다
가난은 욕망이라던데
땅을 가지면 권력을 쥐고 싶은게 가난이라던데
가진게 없어 가난하지도 못한
빈 손바닥에
비틀리고 휜 포도나무 한 그루
포개어 진다
살아야 한다 살아
썩은 뱃속에 씨를 남겨야 한다
전지가새를 던지고 주저앉아 울던 농부가
막걸리 한사발에 또 속듯이
무수히 잘리고 몰리면서도
포도나무는 해마다 꽃을 피운다
버티는 건 자기를 이기는 것
포도알처럼 영그는 불안한 밤들과
포도잎으론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폭력과
가는 허리론 버틸 수 없다고 좌절하는 공포에
속고 또 속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일
힘차게 물을 퍼 올리는
전지된 가지를 보는 어떤 날에
저런 힘으로 살아가리라
잘린 모순을 무시하고
제 신념을 멈추지 않는 포도나무처럼
2016.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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