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입춘立椿
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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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4 11:50
잔설殘雪 몇 점 가지에 물드네
잎이 트고 꽃도 피겠네
고단한 추위를 견디느라
한 켜 단단해진 몸이
물을 끌어 올리는 날
나는 새처럼 나네
하늘의 경계가 어디인지 아시는가
땅에 박힌 발바닥의 윗쪽
숲은 언제나 낯설고
나는 익숙한 진창을 건너네
하늘은 발등까지 내려오고
발목까지 푹푹 내려오고
그래도
진창이라서 서 있고
진창이라서 건너지 않는가
나는 잔설殘雪처럼 나네
가지에 물들어
꽃이 피겠네
20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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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보통의 입춘은 立春을 써서 봄이라 하는데, 나는 겉멋이 들어 立椿이라 썼다. 장하게 서 있는 팽나무 생각도 났고, 아버지처럼 우뚝한 나무생각도 났고, 나무가 사람과 닮았다는 생각도 있어서 였다. 오래 사는게 대수는 아니지만, 오래 산 나무들은 신령한 기운을 준다. 그런 큰 나무가 드디어 일어 설 날을 기리고 싶은 행려자의 마음으로 椿을 썼다. 큰나무처럼 일어서는 아버지들을 기리는 마음도 있었다. 시기적으로 입춘立春이 가까웠고 내용상으로도 입춘立春의 이야기이긴 하다.
진창에 발이 푹푹 빠지는 무거운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지만, 이내 새처럼 가벼운 마음이 되었다가 차분해 졌다. 삶은 힘겨운 것이지만, 그래도 진창이니 서 있을수는 있구나, 늪이거나 바다였으면 이미 빠져 죽었을 것을. 그런 생각도 났고, 봄이 오면 왠지 느껴지는 오르는 기운, 명랑하고 상쾌한 걸음의 느낌도 있었다. 아무튼, 힘겨운 나날들을 관통하는 분들아, 입춘날이라도 기운을 내었으면 좋겠다. 조울증처럼 병이라도, 괜히 기분좋아 발걸음이 가벼이 우쭐거리는 날도 한번쯤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날들은 거짓말이다. 거짓말이었고 거짓말일 것이다. 오늘은 될까, 오늘은 될까 믿고 움직여 보지만, 또 속고 또 속는다. 하루도 희망에 벅차고 미래가 환한 날이 없다. 그래도 봄바람에 미친듯이 우쭐한 잠시라도 있기를 바란다. 속는 줄 알면서도 걸어갈 힘을 얻기 바란다. 포기하면 지는 것이고, 지는 것은 폐기를 의미하며, 폐기는 가족의 해체를, 그리고 산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눈 말똥말똥 뜨고 고통을 느끼는 산죽음은 얼마나 참혹한가. 포기하는 순간이 생사의 순간이다. 사는 건 죽는 것보다 어렵지만, 지는 것보단 쉽다. 고양이한테, 애한테, 신문배달원한테, 두부장수한테는 져도, 자본에는 지지 말아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