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 1968년생 / 편의점
해를 훔친 도적도 정승이 되고
꽃들도 뇌물을 빨아올려야 망울을 터트렸다
여름 볕과 겨울 그늘이 팽팽히 대치하는
봄이 왔다는 인적없는 골목 어디쯤
영역을 넓히는 그늘을 막을 수 없으니
이대로 저녁이 주저앉고
저벅저벅 캄캄한 밤이 오겠구나
밤새 된바람 불고 찬 서릿발 몰아 치겠구나
먹고 튀는 자본의 밤
부당한 해고의 올가미를 씌운 밤
하청, 재하청 겹겹이 쳐진 장막의 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살 수 없는 덫의 밤
죽어간 사람들이 생각나
혀끝이 타는 밤
누군가 또 허공에 목을 걸고
살고 싶어서 오들오들 떨게 될 이른 봄, 고공의 밤
아득한 기다림의 밤
빙하기를 통과한 씨앗처럼
단단한 꿈 한톨 만으로 견뎌야 할
기나긴 밤
2015.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