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지운 나무는 가시처럼 날카롭다
하늘 언저리 초겨울의 숲을 지나가다가
숱한 찌름이 얽혀 번지는 숲의 농담濃淡을 본다
화선지가 먹을 빨아들이는 것을 볼 땐 몰랐던 미세한 결기
셀 수 없이 많은 찌름들이 모여
경계가 없는 먹의 농담을 이루는 것이었다
하얀 종이에 감은 먹을 들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수묵화는 그 많던 결기의 가시를 모아
부드러운 농담으로 그려가는 일이었다
가시를 빼는 게 아니었구나
이유있어 터진 결기의 가시들을 끌어 안는 거였구나
머리는 아프고 손은 얼음처럼 찬 시간들
쫒아 오는 것 없이 자꾸 쫒기고
가만히 좀 있으라고 심장에게 성마른 주먹질을 하다가
참지 못하고 발끈하던 날, 소통하기 싫은 날
나는 나를 접어서 술병 깊숙이 가라 앉히곤 했다
잊어버리자 그깐 분노따위 무례따위
그깐 놈의 잘난 돈 따위
나를 꺼내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싶다고
내내 잊어 버리지 못하고
분해서 눈물이 비져 나오려고 할 때 쯤
혼자 울었는지 접혀서 잠든 날들
지워야만 했던 이파리 한잎 한잎
앙상하게 마른 몸으로 찬 겨울을 걷던 결기들
술잔 속에서 깨어지던 눈물들
날카롭던 경계들을 그러모아
살아 있다는 건 살이 따뜻한 걸 아는 것이라면서
말간 살빛이 도는
화선지 위에 얹히는 감은 농담濃淡
2014.11.13
감은색 : 석탄의 빛깔과 같이 다소 밝으면서 짙은 빛깔.
농담 濃淡 : 색채나 명암 따위의 짙고 옅은 정도.
결기 : 1. 못마땅한 것을 참지 못하고 발끈 성을 내거나 왈칵 행동하는 성미.
2. 바르고 결단성 있게 행동하는 성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