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화1968년생 / 편의점

​농담濃淡의 경계

박상화 0 1,041

 

 

 

낙엽을 지운 나무는 가시처럼 날카롭다

하늘 언저리 초겨울의 숲을 지나가다가

숱한 찌름이 얽혀 번지는 숲의 농담濃淡을 본다

화선지가 먹을 빨아들이는 것을 볼 땐 몰랐던 미세한 결기

셀 수 없이 많은 찌름들이 모여

경계가 없는 먹의 농담을 이루는 것이었다

하얀 종이에 감은 먹을 들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수묵화는 그 많던 결기의 가시를 모아

부드러운 농담으로 그려가는 일이었다

가시를 빼는 게 아니었구나

이유있어 터진 결기의 가시들을 끌어 안는 거였구나

 

머리는 아프고 손은 얼음처럼 찬 시간들

쫒아 오는 것 없이 자꾸 쫒기고

가만히 좀 있으라고 심장에게 성마른 주먹질을 하다가 

참지 못하고 발끈하던 날, 소통하기 싫은 날 

나는 나를 접어서 술병 깊숙이 가라 앉히곤 했다

잊어버리자 그깐 분노따위 무례따위

그깐 놈의 잘난 돈 따위

나를 꺼내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싶다고

내내 잊어 버리지 못하고 

분해서 눈물이 비져 나오려고 할 때 쯤

혼자 울었는지 접혀서 잠든 날들

지워야만 했던 이파리 한잎 한잎

앙상하게 마른 몸으로 찬 겨울을 걷던 결기들

술잔 속에서 깨어지던 눈물들

 

날카롭던 경계들을 그러모아

살아 있다는 건 살이 따뜻한 걸 아는 것이라면서

말간 살빛이 도는

화선지 위에 얹히는 감은 농담濃淡

 

2014.11.13

 

감은색 : 석탄의 빛깔과 같이 다소 밝으면서 짙은 빛깔.

농담 濃淡 : 색채나 명암 따위의 짙고 옅은 정도.

결기 : 1. 못마땅한 것을 참지 못하고 발끈 성을 내거나 왈칵 행동하는 성미. 

2. 바르고 결단성 있게 행동하는 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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