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나는
할머니 손에 고봉으로 담겨 아랫목에 고이 묻어진 밥이었다.
좀 더 커서는
어머니 앞치마에 수북한 단팥빵이었고
아버지 허전하실 때 오르던 관악산의 정상이었다
개밥그릇 발로 차면 벌받는다던 사장이
툭 차버린 건
할머니의 밥과
어머니의 수북한 빵,
아버지의 정상이었다.
그건 남의집 자식한테 그렇게 쉽게 차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필요하면 한 줌 사다가
대충 끼워넣고 기계를 돌릴 수 있는 나사 못은 없듯이
숙련된 기능공은 매뉴얼 이상의 일을 한다
사장을 위해서나
노동자를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도
그건 그렇게 쉽게 생각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할머니의 밥은
임진왜란도 육이오전쟁도 이겨낸 힘이다.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게
비정규직을 하청직으로 만드는 게
이익이라고 계산했다면
그건 그렇게 쉽게 기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회사의 가장 가치있는 재산은 숙련된 인력이고
기계는 착취 당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잉여이익을 만드는 건
오로지 따뜻한 밥으로 숙련된 인력뿐이다.
할머니의 밥이 자본가를 만들어 준 힘이고,
어머니의 빵이 잉여이익을 내주는 힘이고,
아버지의 정상이 자본가를 정상으로 이끌어주는 힘이다.
지극한 사랑은 오류를 만들지 않으며,
숙련을 매뉴얼이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오류다.
2014.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