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뗏목지기

박상화 6 928

티격태격 많이도 싸우고 또 많이도 붙어 다닌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 소원이 '장강의 뗏목지기'가 되는 거였었다. 말인 즉슨, 장강에서 30년 뗏목지기를 하던 어떤 사람이 어느날 밤에 자기 뗏목으로 군대를 건넸는데, 알고보니 그 뗏목지기가 명령을 받고 거기서 30년동안 그날을 기다린 것이었다는 것이었다. 듣던 애들이 다들 무릎을 쳤다.

 

퇴각명령이 없어서 사지에서 퇴각명령을 기다리다 포로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감동을 준다. 명령에 살고 죽는 군인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라는 둥, 융통성이라곤 없는 막힌 사람이라는 둥, 겁에 질려 미쳐서 그랬을 거라는 둥, 말은 한 사람을 여러갈래로 만들지만, 실제로 그렇게 지켜야 한다고 믿는 일을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야 하는 줄은 알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희소한 일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감동을 주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소망을 말할 수 있지만, 누구나 매듭을 지을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인간은 매듭대신 말이 많다. 그 선배도 진작에 뗏목지기를 때려 치운 걸로 안다. 모르지. 사실은 아닌 척, 뗏목을 준비하고 있는 건지도.

나의 뗏목은 무엇인가. 명령이 있었거나 없었거나 스스로 부여한 명령을 위해 한 삼십년쯤 나도 무언가를 기다리며 준비한 것이 있었는가. 누가 뭐라고 해도 기어이 고집을 세워, 홀로 밤새 만들고 또 만들던 뗏목이 있었는가. 뗏목지기 얘기를 들은지도 얼추 30년이 다 되어가거니와, 아직도 소식이 없다고 지칠 일은 아니다.

 

할거야, 때려 칠거야를 이십년간 반복하고, 생활에 매몰되어 먹고 살기 바쁘던 시간까지 곁들여 장강처럼 시간만 30년이 흘러갔다. 시간의 강가에서 30년, 만들어 놓은 뗏목은 한개도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만들면 늦지 않게 대일 수는 있을 것이다. 지나간 얼추 30년은 뗏목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 시간들이었으니까. 그 시간들은 그냥 버려지지 않는다.

 

사회를 만난 어느날로부터 30년이 지난 사람의 나이는 녹슨 것이 아니라, 이제 겨우 뭘 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지금부턴 그 어렵다는 매듭의 시간이다.

 

* 예전에 백기완선생님 만나뵈러 갔을 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시인은 시를 써야지, 데모도 하러가면 안돼!"  

 

이게 무슨 말씀이냐 하면, 데모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너의 사명이 시라면 시를 쓰는 것이 데모보다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데모도 열심히 하되, 시인은 시가 데모보다 중요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누구나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 있다. 사진, 노래, 작곡, 그림, 시, 소설, 수필, 이런 예술 분야 말고 목수일 수도 있고 페인트공일 수도 있고 철도원일 수도 있다. 그것이 자신의 뗏목이다. 30년이 되었든, 40년이 되었든 자신의 즐거운 일이 있고, 즐거운 일로 하는 역할이 있다면, 그것이 언젠가 30년을 기다린 장강의 뗏목지기처럼 이 사회에 역할을 할 것이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언젠가부터 시를 쓰는 사람들은 80년대 저항의 시가, 노동의 시가 식상하다고 하고, 구호라고 하고, 시가 아니라고 하는 문단의 이데올로기에 젖어 7-80년대를 관통하며 써오던 그 시를 버리고 쓰지 않게 되었다. 소련이 붕괴를 했건, 중국이 개방이 되었건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의 시가 전세계를 울릴 만큼 크단 뜻인가? 

 

그러나, 빈민들의 삶은 그때나 지금이나 피폐하다. 모든 민중을 빈민이라 불러도 과히 틀리지 않는 시대가 되었고, 더 많은 빈민을 양산하는 시스템이 가열차게 작동하고 있다. 미국드라마 "워킹데드"는 모든 사람이 좀비가 된 시대를 그린다. 아무생각도 없고 오로지 먹을것만 찾아 팔이 찢어지고 다리가 잘려도 먹을 것에 대한 공격성을 잃지 않는다. 그 좀비의 처지가 빈민의 처지, 자본주의하의 민중의 처지와 뭐가 다른가? 

 

저항의 시, 노동의 시는 더 많이 씌여져야 하고, 그 피폐함을 기록하여야 한다. 그것이 시의 사명일 것이다. 일시의 유행을 따르자면, 예술은 더 많은 돈을 주는 쪽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고,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금을 숭상하는 신앙일 것이다. 예술조차 그런다면 사람은 더 이상 좀비가 되지 않을 방패를 잃고, 사람으로서 살기란 돈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굳혀질 뿐이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나, 사람의 마음에 한번 새겨진 예술의 각인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지표가 된다. 

 

40년대를 풍미한 뽕짝은 아직도 노래방에서 흘러나오는데, 이제 한물간 80년대의 시는 어째서 여전히 흘러나오지 않는가? 2016년도의 시는 과거의 모든 풍조가 보여준 단점을 모두 극복한 시란 말인가? 아직도 거리에서 매맞고 엎드려 오체투지로, 서서 벌벌 떨면서 일인시위를 유지하는 노동자 민중이 있는 한, 그 서슬퍼렇게 휘날리던 노동자 민중의 시만 구태라고 폐기될 이유가 없다. 

 

인터넷은 발달하는데, 시는 구경하기 어려운 시대, 시인들이 시를 팔기 위하여 꽁꽁 숨겨 둔 것이라면, 그 시에 값을 매기는 기나긴 줄에 서서 시가 팔리길 기다리는 것만이 시인의 유일한 희망이라면, 그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시가 껌과 같다면 말이다. 시인이 껌팔이, 앵벌이가 되기를 자처하고, 피흘리는 노동자, 민중의 현실을 외면한 채, 껌을 생산하는 라인에 줄을 서고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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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신경현
옛날에 김형수란 시인(작가회의 사무국장도 아마 했을건데..)이 자신의 시집에 '뗏목지기는 조직원이었네'란 시를 썻었는데...그 시 보고 저도 운동과 혁명의 길에 대해 조금은 더 생각을 했었는데...아련하네요
박상화
맞아, 이 선배가 김형수시인은 아니고, 그 시를 봤던 모양인지, 두분이 같은 내용을 어디서 읽은 건지는 모르겠는데, 이 장강의 뗏목지기 얘기는 유명했던 모양이야. 대장정이 1934년-1935년에 있었던 얘기니까 장강에 뗏목지기가 있었다면, 명을 받고 한 십여년 기다린 셈이고, 김형수시인의 시에도 십여년 기다린 걸로 나와 있는데, 내가 굳이 30년을 쓴 이유는 20대에 세상에 나와 50이 다된 사람들은 지금 30년이 지나고 있고, 아직 뗏목으로 군대를 건네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해서 아직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지.

조직원이건 아니건 그건 뗏목지기의 얘기일 뿐이고, 내가 애기하고 싶었던건, 20에 세상에 나올때 가졌던 꿈(스스로에게 부여한 명령)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요즘 시대를 살면서 시류에 휩쓸려 그 꿈을 놓아버린건 아닌지 되돌아 보자는 거였지.

30년이면 홈커밍데이라고 해서, 첫발을 디디던 장소로 돌아가보는 풍습이 있어. 그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보고 지나온 길을 밟아보고, 이제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는 거지. 50이라고 다들 지치고 힘만 드는데, 아니라고, 그동안 밟아온 길들이, 그 경험이 힘이 되어 이제 매듭을 지을 준비를 할 때라고, 그런 말을 하고 싶었지.

아련하지. 30년동안 시간의 강가에서 넋놓고 앉아 뭐했나 싶고. ^^
김영철
몇해전 빈민운동 이제 고안하구 후배들에게 물려준다 하니
성웅이가 그라문 성님 병나요 하드만 그말이 무신뜻인지 당시에는잘 몰랐었는데 시간이 지나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있을때 성웅이가 찾아와 안타까이 바라보며 도아줄건 하나도 없고 스스로 일아서는 것뿐이라고 했다

손을 놓는다는것 물려준다는것 가르쳐 준다는 모두말은 허상임을 알았지 총기을 상실한 몸과 정신은 자학에 몸부림 치다 결국에는 우울증으로 지욱 문턱 까지 갔다왔고 아! 인간이 이래서 자살을 하는구나 체현도 했다

장강의 뗏목은 많은 물음을 주네
내우울증의 가장큰 자괘감은 뭘하고 이나이먹도룩 살았느냐 였지 모두 세상에 미안만 해서 눈물만 나오고 사람도 회피하고 골짜기 욱상으로만 가는것이야
아파트 옥상도 폴짝 뛰어도 살것같고 무섭지가 않는것이야
결국 패배주의 깊은 나락이 우울증으로 왔다

나처럼 열심히 일하고 자존과 세상에 맟서온 내가 왜그리 나역해 졌던지 그때 그상황은 지금도 이해할수가 없다
결국 이사를 하고 장사를 접은 것도그 혹독한 상실의 시간을 넘어 새로운 세계로 다가서기 위함이다
다행이 작년부터 죽어라고 농사지으며 작물들에 배움에 병은 완쾌되고 다시 본연의 나을 찾아 노년을 준비하고있다
자 어데에서 내 마지막 뗏목을 띄울것인냐
인간의 바다에서~~
박상화
글이 형님의 뗏목이 될 것입니다. 시뿐만 아니라, 수필, 자서전도 쓰시기 바랍니다. 공개를 하시던지 안하시던지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자서전은 부모님 애기부터 본인 살아 온 애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려고 쓰시는 것이기 때문에 쉽고 재밌고 길게 쓸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유익한 얘기만 쓰면 되기때문에, 좋지 않은 기억을 다시 들출 필요도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조부모님= 형님의 부모님, 형님의 조부모님 얘기도 아이들에겐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얘기가 되고, 그게 현대적 족보가 됩니다. 저는 현대의 족보는 그런 살아온 이야기를 남겨주는 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쨋든 다른 글보다 쉽고 길게 쓸 수 있기 때문에 그 글을 쓰시면, 1. 필력이 늘고, 2. 언젠가는 써야할 이야기를 미리 써서 정리하고 다듬을 시간을 충분히 가지게 되고, 3. 글감과 시야가 넓어집니다. 4. 부모님 이야기를 쓰면서 문중 이야기도 은연중 들어가게 되므로, 부모님, 조부모님 이야기 부분만 정리하여 작은 소책자로 만들어 문중 모임때 배포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5. 기왕이면 부록으로 어머님 편지도 함께 편집하시면 더 좋을 것입니다.

시를 꾸준히 쓰시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긴 글을 한번 써 보시면 시도 달라집니다. 제일 긴 글을 제일 쉽고 재밌게 쓸 수 잇는 소재가 부모님 이야기, 내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누구에게 공개 안하시고 쓰고 묻어두셔도 괜찮습니다. 글을 쓰면서 돌아보고, 필력이 늘고, 시를 쓰면서 구성과 용어사용이 훈련되셨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써가시게 될 것입니다.

글을 쓰실 땐, 텍스트나 아래한글, 워드 어느것이나 편한 것으로 하시면 되고, 쓰고 저장하고 앞으로 뒤로 덧붙이고 수정하셔도 되니까 육필로 쓰는 것보다 그게 편하실 겁니다.

그리스 시인 호머는 80세 노년에 <일리아드 오딧세이>를 써서 아직도 남아있고, KFC 창업자 '커널 샌더스'가 파산한 것은 65세였습니다. 그 나이에 낡은 트럭하나 끌고 자신의 치킨 레시피에 투자할 사람을 찾아 다니면서 1008번의 거절을 당하고서야 1009번쨰 겨우 투자자를 찾아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 작은 식당을 시작한 것이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습니다. 찾아보시면 아직 하실 일 많습니다. 아직도 30년은 더 일하셔야 합니다.

가을 햇살이 낙엽에 기록을 남기듯, 가을 바람이 창공에 기록을 남기듯, 그렇게 여유롭게 모든 것을 기록하면서, 이 가을, 좀 더 따뜻하시기 바랍니다.
김영철
오늘이 참 행복한 날이 었네 배추밭에 비가 와주고 책도 두권이나 읽고 올가실에는 일주일에 두권의 책을 보려고 목록도 준비해 보고 아사히 투쟁도 격려해주고 밤에는 한자루 토란대 벗기면서 혹독한 여름을 만끽 하네만 나의 이 소소함이 편치만은 않고 가을에는 하숙비라도 벌려고 노력은 하지만  매여있는 고삐로 살기는 싫었던 내가 이젠 엎드려 사는 법을 배워 볼까도 하네만 과연 견디어 낼수 있을까 하네

즈음 음식도 획일화 되어 집밥이 사라지고 있다네 자본의 총체적 수탈은 엄마들의 손맛까지 앗아가고 학교급식이라고 기성의 음식들에 길들여진 아이들 후일 엄마 맛도 모르는 아이들 얼마나 끔찍한가
그래서 살아가는 글이 필료라고 생각하네만 워낙이 진중하지 못한 필력에 모자람 뿐이네 오죽하문 성웅이가 시는 목슴을 걸고 쓰시요 했고 기현시인은 해방글터 연혁이 이십여년 이라 일갈 했을까 
일과 투쟁의 산물이 글이더만 일을 만들고 그속에서 다시 새로운 글길 찾아 보려네
바지런한 발길에 글터 모두 창작에 몰입 하고들 있다네
고맙고 또 고맙네 가끔 먼하늘 바라보네
박상화
형님 글이 한고비 넘으셨습니다. 형님 글에서 나는 재미가 고소합니다. 긴 글을 쓰시기 시간이 없으시겟지만, 단락단락 쓰시고 이어 붙이시면 됩니다. 년도별로 나누어 놓고 쓰시면 쉽습니다. 제가 쓴 예시를 하나 올려드리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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