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세월호 잠수사, 김관홍님

조성웅 0 530

세월호 잠수사, 김관홍님을 만난 날은 [청주로 가는 사파 희망버스]에 함께 한 날이었다. 

권옥자 동지에게 [연대에는 이유가 없다]란 시를 낭송해드리고 서울 상도포차에서 사파 뒷풀이를 하고 난 후였다.

난 홍대 3번 출구 인근에 있는 '숨은골목'으로 갔다. 엄마 주치의였던 돌쑥의 [내 몸에 침뜸하기] 대림동 강좌가 끝난 후 뒷풀이 자리였다. 난 마침 김관홍님 앞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김관홍님은 현대중공업에서도 잠수사로 일한 적이 있다고 했다. (노동운동 내에서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 같은 곳에서 일한 인연이라는 게 마음을 편하게 했을까? 술 잔이 몇 차례 돌고, 김관홍님은 깜깜한 해저에서 아이들을 한 명씩 안아서 지상으로 올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난 그 느낌이 무섭도록 낯설었다. 뭐라고 공감할 수 있는 단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김관홍님은 그 날의 트라우마로 인해 아내도, 아이들도 안을 수 없다고 울먹였다. 그 눈물이 내 심장에 스며 소름이 돋았다. 뒤이어 쏟아져 나온 국가의 무책임과 무능, 거짓과 폭력에 대한 그의 분노는 폭탄처럼 곧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날 홍대 인근에 뜬 달이 터질 것 같은 수퍼문인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내 가슴에 불안하게 흔들리던 둥근달의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후 [내 몸에 침뜸하기] 강좌, 실습시간에 김관홍님을 몇 차례 만났다. 난 조력자로 실습시간에 참여했는데, 김관홍님은 혈자리가 잡히지 않을 정도로 몸 전체가 부어 있었다. 그만큼 몸이 좋지 않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고, 침뜸에 관심과 의지를 보여줬다. 어느날은 아는 분 사혈기로 풍방따기를 해줬는데, 효과가 좋았다면서 좋아하셨다. 주위에 아픈 분들이 많이 있었는가 보다.

하지만 김관홍님은 자신의 몸을 돌볼 시간도 없이 무척 바빴다. 세월호의 진실을 알리는 자리였고 몇 몇 정치인들이 초대한 자리이기도 했다. 난 가능한 마이크 앞에 서거나 잡지 말라고 당부했다. 자신을 돌보고 자기 치유의 힘을 갖지 않는다면 그가 상처 받을 것 같아 우려됐다. 하지만 김관홍님은 "진실을 알려야죠. 제가 할 일입니다"고 짧게 답했다. 어느날 만나는 자리에서 "래군이 형이 사무실 한 켠을 내어주어 그 곳에서 업무를 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난 어떤 업무인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참 고마운 형님이예요"라고 김관홍님이 말했을 때 마음이 놓였었다. 박래군 선배가 그의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김관홍님의 활동을 좀더 알게 된 건 지난 3월 말, '인디다큐페스티발 2016'에서 상영된 세월호 영화를 보고 난 후였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분들과 함께 진실을 찾고 기록하고 알리는 일에 헌신하고 있었다. 슬픔의 밑바닥에 닿도록 아픈 사람들이야말로 진실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정치적 신체라는 걸, 막막함과 싸울 수 있는 존재론적 좌표라는 생각을 영화를 보면서 하게 됐다.

김관홍님을 마지막 본 건 총선 2주 전이었던 것 같다. 세월호 변호사가 더민주 공천을 받아 선거에 나오게 됐다고, 그의 선거차량을 운전하게 됐다고, 깔끔하게 양복을 입고 나왔다. 침뜸강사였던 돌쑥과 박종필 감독과 김관홍님과 점심 먹으면서 간단하게 쏘맥 한 잔 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난 그날 박종필 감독 집에 꽂아 놓고 온 돼지코를 다음 수업시간에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는데, 김관홍님이 박 감독에게 받아서 가져다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김관홍님은 다음 수업에도, 그 다음 수업에도 나오지 못했다. 선거가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김관홍님, 돼지코는 다른 것을 구입했으니 맘에 두지 마시고 편히 가시어요)

지난 17일, 돌쑥 형의 페북 담벼락을 보고 그의 죽음을 접했다. 몸 전체가 깊은 울음통이었던 사람, 슬픔의 밑바닥에서 솟구쳐 올랐던 분노는 곧 터져 버릴 화약고 같았던 사람, 처연하고 막막한 감정이 지나가자 내게도 울음이 찾아왔다. "마이크 앞에 서거나 잡지 마세요" 그의 싸움을 말리려 했던 내 자신이 미워졌다. 난 어느새 싸움을 말리는 사람, 꼰대가 되어 있었다.

김관홍님은 밤잠을 자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도, 아픈 몸을 이끌고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국가는 국민을 살릴 수 있는 어떠한 능력도 없었다는 것, 오직 거짓으로 학살의 책임을 피해가고 있다는 것, 국가가 하고 있는 최선의 노력은 진실을 은폐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 부패하고 타락한 국가의 탐욕을 위해 국민을 상대로 한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 국가는 국민을 상대로 한 "조직된 폭력"이라는 것을 김관홍님은 "대한민국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구나"라는 말 속에 요약했다.

그리고 김관홍님은 기만으로 작성된 국가의 감사패를 입으로 찢어 발기며 마이크 앞에 섰고 마침내 마이크를 잡고 국가의 본질을 폭로하기 시작한다. "누구한테도 해코지 하지 않고 열심히 사람들 사랑하며 살기 위해" 국가에 맞서며 자신의 온 생을 다해 국가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김관홍님은 무능력한 국가를 대신해 목숨을 걸고 해저에 뛰어 들었고 오직 이윤추구에 대한 비수 같은 생각 밖에 없는 국가를 대신해 아이들을 따뜻한 심장으로 안았다. 국가로부터 배제된 아이들의 부모님들을 위해 기꺼이 그들의 "곁"이고자 했으며 삶의 안전의 문제와 국가의 문제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진실을 찾는 그 긴 도정이 국가를 대체하고 있는 새로운 공통체의 구성부분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김관홍님의 싸움은 나의 싸움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죽음 앞에 내 삶이 더욱 부끄러워지고 초라해지지만 그의 싸움을 잊지 않고 다른 삶을 모색하는 것, '조직된 폭력', 국가를 대체하기 위한 행동을 시작하는 것, 이것이 그의 죽음에 대한 나의 예의이자 그와 함께 찾고 싶은 전망이다.

(지금 내 왼쪽 손목에는 노란팔찌가, 매고 다니는 가방에는 노란리본이. 타고 다니는 차량에는 노란리본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인디다큐페스티발 2016'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만났던 세월호 가족대책위 유경근 집행위원장 때문이다.

"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도 큰 일이다"  

그의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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