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퍼 온글

김영철 0 491
들녘에 씨 뿌리는 손주 보는 게 우리  소원이요-백남기  농부 하늘님께

                    홍일선/농부시인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의 예고된 실패를 패배를
그리하여 무심히 지나쳐간 봄날
그것 우리의 봄 아니었다고
어머니 오래된 소망 같은
가슴 설레이는 봄날
이 땅에 아직 오시지 않았다고
우리는 또 알고 있다
소위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라는
소위 FTA라는 TPP라는 반인반수 괴물이
우리를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할 거라는 것도
우리 농부들은 알고 있다
우리 마음속에서
오래전 떠나갔는지 모르는 국가여
쌀 한톨에 얹혀 있는 우주의 무게를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는가
곡식 한톨에 모셔져 있는
거룩한 생명의 무게가 몇 근이나 되는지
한번이라도 물어본 적 있는가
불쌍한 국가여
그리하여 국가여
도시는 꽃이고 농촌은 뿌리라는
아주 그럴듯한 말씀
지금도 여전히 여전히 유효한가
그리고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십년 뒤 오십년 뒤에도
우리 손주들이 오순도순 나눌 수 있겠는가
국가여 답 줄 수 있는가
다시 국가여
그 많던 보리밭이 밀밭이 호밀밭이 수수밭이
목화밭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어디로 사라져 버렸느냐고
국가여 묻지 않겠다
우리 농부들 발자국 소리를 듣고
벼꽃을 피우신다는 유월 연둣빛 논이
이 땅에서 사라진다 해도
국가여 국가여 너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을미년 11월 14일
버림받은 이 땅의 농부들
머얼리 인왕산이 보이는 곳에
하나둘 삼삼오오 모였을 것이다
조상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저 들녘 지키게 해 달라고
부디 명년에도 저 들녘에
씨 뿌리게 해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국가는
직사 물대포로 우리 소원을 들어주었다
우리 농부들은 국가에게 물건이었다
용도폐기된 거추장스런 물건들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살인 물대포에 진압된
칠순 가여운 백남기 농부들이어야 했다
꿈속에서도 잊지 못하는
전남 보성군 웅치면 유산리
공경하는 아내와 백도라지 백두산 백민주화
삼남매 곁으로 푸른 밀밭으로
어서 돌아가기만을 빌어야 하는
너무도 어질어서 힘을 갖지 못한
백남기 농부하늘님의 슬하여야 했다
그날 국가는
생명창고를 모시는 농부들을
폭도 비적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인왕산에서 들려오는
들어서는 안 될 소리 두 귀로 들어야 했다
이 땅 농부들이 아이에스 폭도들이라는…
목 잘린 농부들 떠도는 것 보았다
목이 잘려나간 반가사유상들이 길거리에
나뒹구는 것 보았다
보아선 안 될 것 보았다
거대한 절벽 위대한 차벽
온 정신으로는 저 푸른 하늘 볼 수 없어
두 눈 감았던 것인데
하늘님 뵈옵기 부끄러워
얼굴 가렸던 것인데
국가는 우리를 폭도라고 불렀다
그리고 때아닌 혼타령인 어떤 이는
우리 농부하늘님들을 척결해야 할
아이에스 폭도라고 불렀다
그렇다
그렇다
우리는 그날 보았다
동학 갑오년 봉두난발들을 보았다
목 잘린 해월들 녹두들 싯푸른 눈빛 보았다
그 참담한 눈빛만이 국가였다
그날 우리는 국가를 보았다
쓰러져 누운 백남기 농부하늘님
가여운 눈빛 속에서도
우리는 보았다
정녕 국가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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