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2016년 1월 25일 봄날

박상화 0 368

날이 차지 않고 햇살 그림자가 진합니다. 

봄이 완연합니다. 

오랜만에 가게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비질을 하였습니다. 지난 겨울에 누군가 버린 꽁초가 풀어져 막 흩어지려는 참입니다. 
봉당 밑 모서리에서 겨울을 버틴 풀들이 모서리를 따라 일렬로 앉아 볕을 쬐는 것 같습니다.
몇개의 비닐 쪼가리와 낡아 풀어진 종이 쪽들을 줍고 봉당을 싹싹 쓸고나니 땀이 납니다. 
어디 외로운 노숙농성장이 있으면 가서 노숙텐트 앞 봉당도 쓸고 마당도 쓸고 텐트 앞을 지나는 길도 쓸어주고 싶어집니다. 
없는 살림에 노숙농성을 하고 있을 망정  그 뜻이 악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방법일 것도 같습니다. 
지금 얼어붙은 고국도 언젠가 이 봄볕처럼 풀리겠지요. 

지난 달엔 누군가 가게 밖 신문가판대 박스를 훔쳐갔습니다.

또 이주전엔 가게 옆에서 노점을 대고 하던 타코버스네가 이사를 갔습니다. 옆 도시에서도 타코버스를 한대 운영하고 있는 멕시코 대가족인데, 누가 그쪽 버스를 박살이 나게 치고 도망갔답니다. 그쪽이 이 쪽보다 장사가 나은지, 이 버스를 옮겨 그쪽에서 장사를 하다가 새 버스를 구하면 다시 오겠다고, 엄마는 수술을 하고 자기네는 보험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새 버스를 구할지, 두달 후 다시 올지 알수가 없고, 너희가 안오면 저 자리를 팔아서 세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 나도 그냥 기다려 줄 수는 없으니, 조금이라도 약조금을 걸어두면 기다려 주겠다고 했더니, 일주일 후에 주마고 자꾸 미룹니다. 
그러니 두달만 기한을 봐달라고 하는데, 당장 월세가 안들어와 저도 은행에 낼 월세를 밀리고 있습니다. 오래 남의 집살이를 전전하며 설움이 많았던 아버지께서 작년에 들렀다 가시면서, 세사는 사람들에게 너무 박하게 하지 말라던 말씀이 자꾸 생각납니다. 

겨우내 코밑에 고드름을 달고 다니던 거지들도 좋아 보입니다. 술 한캔 사가며 한껏 여유가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검은콩 두병과 참기름 두병을 보내신 것이 도착했습니다. 작년 11월 말경에 보내신 것인데, 배편으로 오면 요금이 싼대신 오래 걸립니다. 보통은 한달 조금 넘게 걸리는데, 년말엔 크리스마스, 설날이 끼면 반달가량 더 늦어집니다. 

피란이라도 떠나듯 꽁꽁 동여맨 참기름 병과 콩병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아른아른합니다. 겨울 스웨터를 한벌 같이 보내셨는데, 내년에나 입게 될 것 같습니다. 또 책을 세권 같이 넣어 보내셨는데, 성공하는 사람들의 대화의 기술, 나를 변화시키는 자기 암시, 그리고 제인구달이 지은 희망의 이유입니다. 앞의 두권을 보고 웃다가,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깨닫는 바가 있어서 장사가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가 닿으니 더 독하게 돈을 모으지 못하는 자신이 조금 슬픕니다. 

패장에게 변명은 없다지만, 자본주의의 싸움은 세의 유불리가 승패를 가름합니다. 바로 옆 가게주인이 돈으로 밀어 붙이는 데는 항우장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패장이 되어 가고 있어서, 쇠락을 빤히 보면서도 손 놓고 한숨이 잦습니다.

그러나, 봄이 왔는가.. 마음은 보드라운 흙을 밟고 하냥 걷고만 싶은 그런 날입니다. 며칠 내로 한파가 한번 더 들렀다 가겠지요. 그리고 나면 날도 길어지고, 볕도 따뜻한 날들이 이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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