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아부지

김영철 0 379

​벌교 낙안 평야에서



내고향 벌교는 한이 많은 고장이다.넉넉치 못한 집안에서 자라 어릴적

고향에 대해, 좋은 추억보다는 고단했던 형편들이 아직도 가슴깊이 새겨져있다.

동네어귀를 돌아서면 벌교의 젖줄 별교천을 중심으로 낙안평야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이 논들은 그야 말로 옥토였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걱정없이 농사을 지을수 있는 좋은

논이라그 대부분은 대지주들의 차지였다.

가난하든 아부지 논들은 신작로 위 천수답이라 하늘만 쳐다보는 마른땅 뿐이라

가뭄이 들면 물한방울 대기위해 논둑에서 밤을 지켜야 했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이 농사짓는것이 생업 이었고, 쌀은 곳 돈이자 생명이었다

우리 어버이들의 필생 소원은 물걱정 없는 저 낙안뜰 논 몇마지기 내땅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소작농의 삶은 말할수 없이 엄혹했다

쎄 바지게 일년 농사지어 정미소에서 하얀 쌀이 쏟아지면 그 절반이 지주의 몫이었다

아비 어미들은 힘들던 농사일보다 지주에게 바치는 내 피같은 쌀에 치를 떨면서도

또 내년에 땅을 부치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형극의 시절이었다.

장리쌀에 고리대금으로 지주들은 나날이 똥배가 불러가고, 가난한 어버이들은 똥구멍이

째지게 가난을 피 할수가 없었다.

 

그 시절 피눈물의 역사를 누가 알고있을까

보리대 모자에 우장을 걸치고 쌈지담배 말아 허기진 세상 날려 보내던 고단 했던 시름들...

비록 넉넉하게 맥이고 입히지는 못했지만 새끼들은 오뉴월 나락처럼 풋풋하게 자랐고,

그 오진 꿈들이 어버이 굽어진 허리를 곧추 일으켜 세웠다.

 

지금은 휴경지다 뭐다 해서 버려진 땅들이 늘어가지만 한때는 우리 어버이들의 필생의 꿈과

생명들이 너울대던 낙안벌판을 바라보며,

아부지 가시며 마지막 말씀이 가버린 세월속에 흩날리고 있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흐큰 쌀밥에 배추김치 척척 걸쳐서 한번만 묵고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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