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벌교 장날

김영철 0 1,116

 

벌교장날

 

구경거리가 별로 없던 5~60년대 벌교 장날은 구경거리도 참 많았고, 장날에는 어림잡아 한 2만 명의 사람들이 운집했다. 그 규모를 상상해보시라!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이 장꾼들로 가득 찼다. 당시 벌교읍민이 6만에 육박했고 지리적 요충이라서 인접은 말 할 것이 없다. 멀리 광주 구례 여수에서도 전을 펴기 위한 장사꾼들이 도라꾸에다 장짐을 가득 싣고 장을 보러 왔다. 특히 낙성에서 전동으로 내려오는 일직선의 신작로에는 하얀 옷을 입은 장꾼들의 행렬은 푸르른 낙안들판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장관을 이뤘다. 중간 상인들은 들몰, 봉림모퉁이, 선근다리에 까지 진출하여 머리에 이고, 소 구루마에 실려 나오는 물건을 사기위해 곳곳에서 흥정이 벌어졌다. 약 병아리 한 마리, 닭 알 몇 꾸러미, 깨 한 되 팔아 아그들 고무신, 양잿물, 촛고지 기름도 사야하고 가난했던 그 시절이었지만, 장날에 벌교는 활력에 넘쳤다. 이십 여리 장에 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지칠 줄 모르던 벌교의 기운들이 모여지는 곳이었다.

 

쌀 사는 것보다 배삐떡이 이문이 좋아 빚어온 어무이 손맛

대나무로 파는 것 보담 갈퀴를 만들어 팔고

동짓달 긴긴밤 세월을 엮어내듯 잡 털 하나 없던 새끼줄

석거리 재 발 품 팔아 외서 댁이 안고오던 삼베 한포

 뱅골 재 넘어 동강 댁이 이고오던 잡괘기 한 다라

 그림처럼 깔끔했던 낙안에서 지고오던 갈잎나무 한 짐

 떠돌이 약장사들의 현란한 북소리

  야바위꾼들의 기막힌 속임수. 장날의 풍경들이다

 

장터에 가면 없는 것이 없었다, 품목 별로 집단을 이루고 특히 싸전은 그 당시 한 되, 한말로 사고파는 장사꾼들을 일명 ‘되백이’라고 불렀다. 촌에서 쌀로 돈 사러 오는 순박한 우리 어버이들은 한 말에 한 되 정도는 덤으로 더 가져와 한 말 값으로 받고 판다. 해서 되백이들은 어느 동네 어느 아줌씨가 쌀을 후하게 담아오는 넉넉한 인심을 훤히 알고 있다. 또 팔 때면 귀신같은 솜씨로 한 말 두 말 담아주고 나면 몇 되의 쌀이 남게 되고, 이 남은 쌀들이 곧 되백이들의 이익금이 되었다. 쌀이 곧 돈이었던 당시 싸전에는 전대를 찬 장사꾼들로 활기에 넘쳤고 제법 큰돈들이 유통 되었다.

 

옛날부터 돈이 날라 댕기던 곳에는 술집이 번창 하듯이, 당시 벌교장터에도 아마도 100여명이 넘은 술집 작부 들이 촌로들을 호객하며 파장 이후에까지 시끌벅적 했다.

붉은 입술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갖은 아양에 순박한 촌 양반 새끼소 한 마리 거금은, 금방 바닥이 나고 돈이 다 떨어진 것을 아는 작부는 매몰차게 다른 사내에게 안겨버린다. 쌍년 똥갈보 갖은 욕을 다해도 대꾸도 없이 또 다른 봉을 찾아 눈웃음치고

 

“씨벌년이 날 몰라보고 요로코롬 괄시를 해? 이년!”

  아무리 생각을 혀 봐도 분은 안 풀리고, 슬며시 열어본 지갑은 텅 비어있다.

  “허허, 내가 눈 껍데기에 뭣이 씌었는가 봐. 마누라한텐 뭐랄 거나!”

  “흔디 고래도 그 가시내 살도 보드랍고 고놈에 분냄새가 술맛을 돋우거든.”

  고읍 아자씨 갈지 자 걸음세에 장날 하루해가 저문다.

 

 

벌교장날은 물건만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만남의 장도 되고 특산품과 당시 벌교의 풍속이 잘 어우러진 전국에서도 몇 번째 가는 큰 장 이었다. 재 너머 사돈과 만나 국밥 한 그릇 말아 딸년 안부도 묻고 총각처녀 중매도 서고 논밭 흥정도 부치는, 지금으로 치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소통의 공간 역할도 톡톡히 했다.

 

가난했던 그 시절, 하루 밥 세끼 먹고 사는 것이 지상 명제였던 우리선조들의 치열했던 삶들은 당시 벌교 번영의 힘의 원천이었고 또한 우릴 가르치고 키워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융숭했던 벌교장날, 그 날들을 추억하며 지금 우리세대는 다음 우리후손들에게 과연 무엇을 남겨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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