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시> '정든 날들'에 대한 현장 비평과 이성혁 문학평론가의 비평

조성웅 2 1,346

 

함께 일하는 배관조공 상국씨는 나랑 갑장이다

내가 봉초 마는 모습을 보고 내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던 상국씨가 오늘 휴게시간에 내 곁에 오더니 예술가 같다 혹시 예술 하느냐고 묻는다.

난 좀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상국씨는 성웅씨 핸드폰 컬러링에서 중식이의 여기 사람 있어요가 흘러나올 때부터 생각했다 여기 일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노래를 듣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란다.

점심시간 다들 피곤에 절어 자고 있는데, 몇 번 전화가 왔었다.

날 살려줘요 제발, 살려줘요 나 숨이 막혀요

자는 분들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속이 뻘개지기도 했던 기억이 났다.

그럼 상국씨는 내가 예술 중에 어떤 예술을 할 것 같아요?”라고 물었다. “음악가나 작가요”, “그래 보여요”, “”, “사실 저 씨 써요”, “봐 맞잖아, 쓴 시 좀 보여줄 수 있어요

 

난 삼성정밀과 에쓰오일에서 일하면서 쓴 정든 날들을 보여줬다.

상국씨는 이거 내 이야기네”, “‘오직 웃음으로만 서로를 격려할 때가 있다 그렇게 말 한마디 없어도 체온 같은 대화가 시작되는 때가 있다’, 이거 좋네요. 나도 이 느낌 알아요. 조공으로 일해보지 않으면 이 느낌 모를 거예요

난 이 느낌을 아는 상국씨가 진짜 친구처럼 느껴졌다. 이 현장에서 좋은 독자이자 친구를 만났다. 좋다.

 

삼성정밀에서 함께 일하면서 내게 정든 날들의 시적 모티브를 제공했던 지훈씨는 작년 연말에 배관사를 달았다.

정든 날들을 보고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 뜨겁네요라고 말한 지훈씨의 말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상국씨도 지훈씨도 "체온 같은 대화"의 그 힘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래는 이성혁 문학평론가가 쓴 정든 날들에 대한 비평이다.

 

<이 달에 읽은 시>

 

노동 속에서 자라나는 체온 같은 대화

이성혁(문학평론가)

 

한달짜리 플랜트 셧다운 공사가 끝날 무렵이면 다들 전화기를 끼고 산다

여전히 일자리는 비좁은 곳이라서 굴종의 일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오늘도 수두룩하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되는데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저녁밥상에 깃드는 소박한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인정사정없이 버려졌다

그리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재창고에 공구를 반납하며 돌아다본 공장은 악몽으로 축조된 성 같았다

난 저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나 공장 밖은 실업의 날들이었다

 

능률 좀 올리라는 현장소장의 말 한마디에 마음부터 바빠지는 젖은 몸은 삶의 안전 밖이었다

수많은 징계로 이뤄진 현장 통제는 폭염 같았고

짜증내고 화내고 윽박지르는 명령의 언어가 공장을 가득 채웠다

너 죽고 나 사는 경쟁 속에서 목숨은 더욱 사소해졌다

 

오늘 골절통처럼 불행이 내 곁에 도착했으나

난 아주 우연찮게 살아남아 공장 정문을 걸어 나올 수 있엇다

그러나 아무도 날 기억해주지 않았다

부재함으로 증명되는 삶은 악몽처럼 위태위태했다

 

젖은 몸을 모질게 대하기엔 살아가야 할 날이 너무 서러웠다

작업을 마치고 함께 저문 퇴근길을 걸을 때면

지쳐 보이는 그대 등에 손 얹어주고 싶은 날 있다

서로를 품기 위한 응결된 마음의 지도,

내 살에 맺힌 땀은 생의 둥그런 비밀을 요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쫒기듯 일하다

단내 나는 눈빛이 서로 마주칠 때가 있다

오직 웃음으로만 서로를 격려할 때가 있다

그렇게 말 한마디 없어도 체온 같은 대화가 시작되는 때가 있다

정드는 순간이다

경쟁이 멈추는 시간이다

 

4인치 그라인더여 파이프여 밸브여 후렌지여 엘보우여 직각자 망치여 스패너 볼트 너트여

정드는 건 함께 겪어내는 일이다

둥근 땀의 통로를 따라 잠시 웃는 것만으로도 악몽 같은 질서에 균열이 생기고

귀 기울여 듣는 체온 같은 대화 속에서 불복종이 자라는 경이가 있다

- 조성웅, 정든 날들

  

 

 

 

노동시를 낡은 시, 시대착오적인 시로 치부할 때가 있었다. 지금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현재 노동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삶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가 삶의 반영일 수만은 없지만, 한편으로 시의 공간이 삶으로부터 유리된 가상공간은 아니기 때문에 삶의 중요한 현장인 노동 현장을 시가 외면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육체노동의 현장은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종사하고 있고 종사해야 할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이 현장은 문학 판에서 무슨 별세계처럼 취급하는 경우가 있었다. 한국 사회에 양산된 비정규직 육체노동자들은 오늘날 온갖 불평등한 노동 조건에서 더욱 비인간적인 처우를 견디면서 노동해야 하는 데도 말이다. 삶의 태반을 이 노동현장에서 지내야 하는 노동자들에겐 이 현장이야말로 삶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삶의 착취와 굴종, 배제가 일어나고 있는 이 처절한 현장은 이 신자유주의 사회의 뜨거운 핵이자 비밀이기도 하다. 그곳은 이 사회의 정당성이 파괴되는 장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시는 이 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며, 나아가 더욱 철저하게 형상화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현장을 그릴 수 있는 시인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동 현장, 그리고 노동운동 현장의 진실을 붙잡고 형상화 해온 노동자 시인 조성웅의 시는 그래서 한국 시에서 소중한 위상을 갖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새로 창간된 창비의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

박상화
뭐여.. 비평은 어디갔다 팔아 먹엇노? ^^
조성웅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ㅠ 작성완료 전까지 확인했는데, 완료 버턴 누르고 확인하면 글이 계속 잘리네 ㅠ 새글에 올려도 ...창비의....까지만 등록되고 뒷 글은 삭제되고 ㅠ 도대체 뭐여 알수가 없네.....
카테고리
반응형 구글광고 등
최근통계
  • 현재 접속자 2 명
  • 오늘 방문자 191 명
  • 어제 방문자 178 명
  • 최대 방문자 2,936 명
  • 전체 방문자 461,489 명
  • 전체 회원수 15 명
  • 전체 게시물 15,811 개
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네이버밴드에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