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밀양 송전탑 반대투쟁 시 모음/ 해방글터, 이철산, 송경동

해방글터 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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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말아요, 다시 꽃은 피는데

 

- 조선남

 

학이 날개를 펼치듯 펼쳐진 승학산

봄이며 붉게 타오르던 철쭉

그 품에 안겨 살아왔던 보라마을

마을의 들풀처럼 나무처럼 그렇게, 그렇게

그냥 사는 듯, 죽은 듯, 나무인 듯, 풀인 듯,

살아 왔던 고향 땅.

나라를 빼앗고, 땅을 빼앗아도 빼앗기지 않았던

고향산천에 쇠말뚝을 박고, 철조망을 치고

거미줄같은 고압철탑이 들어선다고

밭농사 논농사 포기하며

얼마를 살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 동안은

포기할 수 없었던 보라마을

“살아서 송전탑 들어서는 것을 볼 수 없다”며

불꽃이 되어 타올랐던 보라마을 이치우 어르신

 

울지 말아요, 다시 꽃은 피는데

무덤을 파헤치고 그 위에 송전탑을 세운다고 해도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이고도 송전탑을 세우겠다고 하는

국가 권력, 한국전력

다 끝난 것이라고 포기하지 말아요

지난 8년을 어떻게 싸워 왔는데

애통하지 말아요, 울지 말아요

다시 꽃은 피는데

 

보세요, 다시 꽃은 피는데

봄은 오고 있는데

그 눈물의 세월이

우리들의 영혼을 말리고 태웠던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고 우리들을 이간질하고

교활한 뱀의 혀로 농간하던 한전 놈들은

쇠말뚝을 박고 저희들의 돌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니까요

 

보세요, 봄은 저렇게 다시 우리 곁에 오고 있어요.

다 끝난 것이라 생각하지 마세요,

잠깐 왔다가는 연대라 생각하지 마세요,

보라마을은 밀양에만 있는 보라마을이 아니에요

철탑이 지나는 마을마다.

핵원전이 들어서는 마을마다

한번쯤 왔다간 연대의 손길마다

어르신들의 그 거친 손을 잡은 사람들 가슴에

다시 보라마을의 봄은 오고 꽃은 피고 있어요

 

울지 마세요, 다시 꽃은 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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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아리랑

 

- 천용길

 

 

날 좀 보소

한 평생 일군 논밭 위로

싸돌아 댕기는 헬기 보느라

여문 곡식 바지런히 거둬들일 들판으로

자리를 꿰찬 시커먼 경찰 보느라

꽁꽁 얼어붙은 이 노인네 얼굴을

지발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곱게 분칠하고 수줍게 시집왔던

바드리 마을 부산댁 얼굴에 굽이굽이 그려진

주름살을

동화전 마을 양산댁 손등에 피어난

흙빛 주름꽃을

미우나 고우나 내 자식새끼 길러준

밀양 땅에 살다 가고 싶었구마

인자 저 철탑 들어서면

고마 살란다 아니 안 살란다

지발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이치우 할배 가던 날

유한숙 할배 가던 날

다리에 힘이 풀렸구마

눈물 훔치고 앉아있자니

헬기 날아다닐까 철탑 실어나를까

졸이는 마음에

분향소로 달려갔구마

근디

정든 임이 가시는데 인사도 못해

할배 할매

얼굴 좀 보소

 

날 좀 보소

곡식 지어내고

자식 농사 지으면서

욕보이지 않게 살았구마

아침 일찍 일어나 새 아침을 맞자는

새마을 운동도 해봤구마

농협에서 빌려다 쓴

영농자금도 꼬박꼬박 갑았구마

나랏님 녹 먹는

경찰, 면사무소, 한전

우리는 다 믿었구마

인자 안 믿어

철탑에 목맨 조무래기들

곡식 알차게 여문

밀양 들판 좀 보소

 

우리는 철탑 물러날 때까지 아리랑 고개 넘을란다

밀양 촌놈 서울 촌놈 같이 넘자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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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국가는 필요 없다

 

 - 조성웅

 

국가는 점령군처럼 밀양에 왔다

손마디 지문이 닳도록 일궈 온 땅에

이 개노무 새끼들

국가는 적군보다 더한 원수로 왔다  

 

사지가 들리고 팔다리가 꺾이고 짓밟히고

힘이 없어 속절없이 당하고 버려지는 것이

억울하고 서럽고 분하다

 

전기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우린 근근이 살아갈 수 있다

원전이 없다면 우린 더욱 잘 살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미생물장이 있어

서로를 돌보고 가꾸는 손길이 닿으면 고요한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반딧불이 켜지고 별빛이 켜지고 마을 마을마다 마음빛이 켜진다

우리 생의 무한동력,

이 빛에 의지 해 살아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 없다

 

정말, 아무 것도 필요 없다

요대로 땅 파 먹고 살다가 죽고 싶다

학교 밖의 학교에 찾아온 어진이와 누피와 산골소녀와 선아와 함께 땅 파 먹고 살고 싶다

학교 밖에서 다시 교실을 세우는 계삼이와 함께 땅 파 먹고 살고 싶다

 

무수한 마음의 광합성 작용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국가 없이도 서로를 잘 돌볼 수 있다

우리는 국가 없이도 서로를 잘 가꿀 수 있다

우리는 국가 없이도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

 

행복하게 웃는,

땅이 대표고 미생물이 대표고 비가 대표고 바람이 대표고 햇빛이 대표고 나무와 숲이 대표고 내가 대표고 우리 모두가 다 대표다

더 이상 국가는 필요 없다.

 

 

2014년3월1일

 

----------------

 

그 마을에서 들려오던 소식들

- 밀양과 청도를 생각하며

 

- 신경현

 

그 마을에서 들려오던 소식들은

항상 불안이 묻어나기 일쑤였다.

기계톱에 잘린 나무들이 맥없이 쓰러지고

공사 장비를 매단 헬기들이 연신 날아오르는

얼어붙은 골짜기 사이로

무전기 명령들이 오가고

명령을 따라 바쁘게 이동하는

경찰의 발소리들이

어지럽게 마을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불빛들, 사람의 마을에 피어나던 불빛들

오늘 내일 하고 있었고

생살이 터지면서 함께 솟구치던 비명소리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쫓겨난 마음에도 꽃은 피어나겠지만

쭈글쭈글한 손등위로도 새들이 찾아들겠지만

궁핍한 그 마을의 불빛들을 꺼트리기 위한

사주경계는 날이 갈수록 두텁고 단단해져 갔다

철탑이 들어서고 국가시책이 완성되면

그렇겠구나 그 마을, 이제

일을 마치고 돌아와

꾹꾹 눌러 담았던 밥그릇이며 국그릇들이

해거름에 주저앉아 마시던 빈 막걸리통 들이

찢어지고 산산이 부서진 채

쓰러진 폐가에 고스란히 남아

쓸쓸히 저무는 바람소리에

이리 저리 흔들리겠구나

거대한 송전탑에 갇힌 깜깜한 밤하늘에

시린 별빛만 소리 없이 흐느끼겠구나

 

 

--------------

 

밀양! 그 생명의 땅에서

 - 배순덕

 

젊은날 부대끼는 세상살이 지쳐 갈 즈음이면 작은 가방하나 매고 무작정 걸었던 능선들 운문산 산기슭을 따라 서로 엉켜 의지하며 자라던 생명들이 산내천 맑은 강으로 모여 어두움이 쌓이면 반딧불되어 너울너울 춤추던 그 생명의 땅에서

따스한 봄볕이 스며든 고사리 분교를 지나 어머니 넉넉한 가슴처럼 드넓은 사자평에서 교만과 오만에 젖은 나를 버리고 더 작은 나를 찾겠다고 무겁게 발걸음을 내딛었던 천황산 그 생명의 땅을 그리워하며

수년동안 자본의 노예가 되어 이공장 저공장으로 떠돌다가 살아온 세월 끝자락에 고단한 노동자의 삶 삭막한 도시생활 등지고 말양! 그 생명의 땅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눈부신 세상도 뜨거운 세상도 아닌 가난하지만 마음 따뜻한 이웃과 햇볕이 내려준 만큼 씨 뿌리고 빗줄기 내려준 만큼 자라고 바람이 불어준 만큼만 거두며 그 생명의 땅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765k송전탑으로 부터 밀양, 이 생명의 땅을 지켜내고 싶습니다

 

 

 

---------------

 

밀양간다.

 

- 이철산(대구작가회의 시인)

 

 

밀양 간다 밀양 가자

흉물처럼 마을마다 사람마다 가슴마다

박아놓은 쇠말뚝 뽑으러 가자

박아 놓은 국가와 자본의 욕심을 뽑으러 가자

박아 놓은 차별과 막무가내 치욕과 수모를 뽑으러 가자

밀양 간다 밀양 가자

다 필요없다 살던 대로 살고 싶다

호소하다 사정하다 내몰리고 떠밀렸던

아름다운 사람 사랑스런 여인 멋진 사내 살고 있는

사람 살기 좋은 곳 사람 살아가기 좋은 곳

밀양 간다 밀양 가자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핵발전소

대구로 어디로 전기 보낸다는 고압전선 76만5천 볼트

왜 하필 사람 머리 위를 지나나

왜 하필 사람 사는 마을 가로질러 가나

왜 하필 사람과 사람 갈라놓고 몰아붙이나

밀양 간다 밀양 가자

대구 사는 우리들이 저 전깃길

사람 죽이는 저 전깃길 저 쇠말뚝 철탑

필요없다 멈추어라 용서할 수 없다

그리하여 살아야 한다 다시 살려내야 한다

밀양 간다 밀양 가자

한 번 가서 사는 도리를 배우고

한 번 가서 뜨거운 희망 눈물을 배우고

한 번 가서 손 꼭 잡는 질긴 약속을 배우고

한 번 가서 품어주는 가슴 따뜻한 사랑을 배우고

밀양 간다 밀양 가자

한 번 가서 안 되면 두 번 가고

한 번 해서 안 되면 두 번 하고

가도가도 해도해도 안 되면

밀양 간다 밀양 가자 아예 밀양에 살아버리자

 

------------------------

 

밀양으로 가는 길 - 고 유한숙 어른 추모 100일째를 맞아. 

 

-  송경동

 

 

밀양은 어디에 있나요

밀양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나요

버스를 타고 가면 되나요

기차를 타고 가면 되나요

 

밀양으로 가면서는 어떤 꿈을 꾸면 되나요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보리싹이 익는

아름다운 고장을 생각하면 되나요

하얀 머릿수건을 쓰고

논물을 대는, 밭고랑을 일구는

농부들의 평화로운 마을을 꿈꾸면 되나요

 

아, 그러나 지금 밀양은 폐허의 땅

원전마피아들의 짜릿한 속셈만 흐르는 곳

푼돈의 모략이 판치고

죽음의 전류가 관통하는 메마른 땅

계엄의 헬리콥터가 뜨고

점령지의 병사들이 진주하는 곳

 

 

거기 나뭇가지마다 목줄을 걸고 있는 난쟁이들

평생을 파먹던 땅에 흙무덤을 파고 있는 검둥이들

날마다 걷어 채이고 끌려가는 무지랭이들

논바닥에 엎어지고 산비탈로 굴러 떨어지며

오열하는 사람들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며 함께 절규하는 사람들

 

도대체 밀양으로 가는 길은 어디인가요

돌아보면 밀양 아닌 곳이 없네요

눈물 아닌 곳이 없네요

아픔 아닌 곳이 설움 아닌 곳이

분노 아닌 곳이 없네요

 

아, 어디로 가야 우리들의 밀양이 있나요

광화문 네거리에서 무릎꿇고 나랏님께 절하며 상소문이라도 읽어야 하나요

동학난 때처럼 장총을 들고 그리움에 지쳐 산으로 오르면 되나요

죽창이라도 들어 저 가렴주구들의 뱃대지를 찌르면 되나요

폭동이라도 반역이라도 되어야 하나요

 

아, 도대체 그 아름다운 밀양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나요

넉넉한 인정이 흐르고

작고 낮은 이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그 땅은 어디에 있나요

자연과 인간이 흙과 감자처럼 조화롭게 어우러져 튼실히 익어갈 수 있는

그 생명의 땅은 어디에 있는가요

 

이시우 어른

유한숙 어른

입 좀 열어 얘기 좀 해주세요

왜 그렇게 말이 없으신가요

유한숙 어른께서 그 차디찬 냉동고를 나와

이제 그만 저 참된 우주의 밀알 하나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나요

 

그래요. 알겠어요

우리에겐 다른 빛이 필요하지요

어떤 폭력에도 굴욕에도 꺾이지 않는

존엄한 인간성이라는 그 영롱한 빛

어떤 핵분열도 따라 올 수 없는 그 연대의 빛

어떤 핵폭발도 따라 올 수 없는 분노의 빛

어른께서 놓아두고 간 그 생명의 빛

 

난 그 빛을 찾아 오늘도 꿈속마다

나의 밀양으로 끝없이 가고 있어요

 

--------------------- 

 

송전탑 할머니 살려주세요


- 이응인 시인(밀양 부북면 주민)


산속 움막에서
잠결에도 깜짝깜짝 놀라
식은땀에 젖는
밀양 송전탑 할머니들 살려주세요.

여기 사람 있다고
여기 산골에 짐승이 아닌
사람이 살고 있으니
76만 5천 볼트 고압 송전탑은 안 된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대답이 없습니다.

돈 400만원 줄 테니
이제 그만 하라고
마을에 몇 억씩 보상이 나간다고
한전은
돈, 돈, 돈만 말합니다.

억울하고 원통한 울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을 때
사람은 죽고 싶게 된다고 합니다.

걱정 마세요
마을과 농토를 피해서 갈게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중화 할게요.
이렇게 따뜻한 말로
눈물을 닦아주세요.

힘없고 약한 시골 노인이라고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돈에 눈이 먼 자들
막아야 해요.

약한 자들을 짓밟고 서서
한 덩어리가 된 정치, 권력, 자본.
그런 정부 미련 없이 버려야 해요.

귀 좀 기울여 주세요.
산짐승 소리가 아닙니다.
할머니들이 울부짖고 있습니다.

이제 괜찮다고
우리가 함께 하겠다고
손 좀 내밀어 주세요.
당신, 당신, 우리들은
돈이야 없지만
따스한 가슴은 있잖아요.

이게 제 눈물이에요.
밀양 송전탑 할머니들 살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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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조성웅
<더이상 국가는 필요없다> 행갈이가 하나도 안되었어, 내 방에 올린 시를 참고로 수정 좀 해줘 ㅎ
해방글터
미안. 이 시모음을 밀양투쟁사이트에서 퍼왔는데, 고대로 갖다 붙이니 그렇게 되었네. 내가 원본을 보기 전이었으니 이해하시게. ^^
해방글터
순덕이 누님 시도 행갈이가 의심스러운데..-.,-  근데 원본을 볼 수가 있나.. 누님이 와서 볼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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