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동짓달

김영철 0 467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제삿날이 없었다

큰 집에는 거의 다달이 제사가 있어 친척들도 많이 오시고 맛난 것도 많았는데

우리 집 엔 왜 제사가 없을까? 참 어린 시절 유진한 얘기이다.

흔데 일 년에 딱 한번 우리 집에도 제삿날이 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동지가 돌아 올 때쯤이면

어머니는 마른 생선도 준비하고 떡쌀도 준비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까운 친척 한분도 오시질 않고, 그것도 새벽에 지내면서

단자도 나눠 먹지도 않고 소리 소문도 없이 지내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는 뉘 집 생일 제삿날까지 손바닥 보듯이 함께 살던 시대였다

 

내가 그 제사 내력을 알게 된 것은 여드름이 꽃 피는 시기였다.

큰 고모에게 도대체 누구 제사이냐고? 왜 이리 친척도 오질 않느냐고 물으니

한숨을 크게 쉬시면서, 니 작은 아버지 제사라고 한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작은 아부지?

한번 입이 열리신 고모는 모진 세월의 울분을 나를 잡고 토해 내시었다

작은 아버지는 1940년대에 사범학교을 졸업하고

집안의 대통령같은 아들이었는데

어느 날 여순 반란 사건에 입산하여 생사도 모른다 하시며,

소문에는 살아 월북했다고 위로 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필시 산속에 송장이 되어 무덤도 없다고,

고모는 날 안고 피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그래서 둘째이신 우리 아버지가 막내 동생의 제사를 몰래

지내 주는 것을 알았다

 

73년 입대를 했다 무슨 비밀취급 인가를 받기위해 신원조회를 하는데 나만 탈락이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소총수 수색병으로 박박 기면서 만기 전역 할 즈음

작은아버지 연좌제 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늘, 달력을 보니 동짓달 이 기울고 있다.

이젠 누가 작은아버지 제삿날은 커녕 기억해주는 사람도 없다

날은 차고 눈도 나리고 혼자 순대국집에서

얼굴도 모르고 그림자도 모른 내 작은 아버지와 함께 막걸리 한잔 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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